구독신청 서비스 안내

음원·미술품·한우…가격 결정은 누가? [BUSINESS]

다시 기지개 켜는 조각 투자

  • 정다운 기자
  • 입력 : 2023.10.13 14:13:53
  • 최종수정 : 2023.10.13 14:14:02
한동안 규제에 발 묶여 위축돼 있던 조각 투자 시장이 자본 시장의 새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조각 투자는 하나의 자산에 여러 투자자가 함께 투자하고 이익을 나눠 받는 투자 기법이다. 금융당국이 조각 투자를 증권으로 인정하고 제도권 편입을 시도하면서 조각 투자 플랫폼들이 정부 규제에 맞춰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부동산, 미술품, 한우, 식물, 전기차 배터리, 지식재산권(IP) 등 온갖 형태 자산이 증권 형태로 발행되고 유통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셀스탠다드가 운영하는 현물 조각 투자 플랫폼 ‘피스(PIECE)’는 투자계약증권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서 제출을 준비 중이다(좌). 한때 위법성 논란이 불거졌던 뮤직카우의 음악 ‘저작권료 참여 청구권’은 ‘음악수익증권’으로 정식 발행돼 뮤직카우 앱에서 사고팔 수 있게 됐다(우). (바이셀스탠다드 제공, 뮤직카우 홈페이지 캡처)

바이셀스탠다드가 운영하는 현물 조각 투자 플랫폼 ‘피스(PIECE)’는 투자계약증권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서 제출을 준비 중이다(좌). 한때 위법성 논란이 불거졌던 뮤직카우의 음악 ‘저작권료 참여 청구권’은 ‘음악수익증권’으로 정식 발행돼 뮤직카우 앱에서 사고팔 수 있게 됐다(우). (바이셀스탠다드 제공, 뮤직카우 홈페이지 캡처)



뮤직카우·피스, 규제 맞춰 사업 재편

미술품, 저작권, 한우 등 다양한 금융·실물 자산을 쪼개 파는 조각 투자는 적은 돈으로 값비싼 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 관심을 샀다. 하지만 제도권 밖에 방치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토큰증권의 시장 가치가 주목받자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 미술품·한우 등 5개 분야 조각 투자 서비스가 ‘증권성’을 띤다고 결론짓고, 법 테두리 안에서 거래하도록 했다. 지난 7월에는 이들의 사업 재편을 승인하고 요건만 갖추면 특정 자산을 기초로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현물 조각 투자 플랫폼 ‘피스’ 운영사 바이셀스탠다드는 최근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제재 면제·사업 재편 승인을 받았다. 이에 따라 연내 투자계약증권(잠깐용어 참조)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서 제출 준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앞으로는 기존에 다뤄온 미술품, 명품 등 소형 자산뿐 아니라 한우, 부동산, IP 등으로 취급 가능한 다양한 자산으로 투자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음원 투자 플랫폼 ‘뮤직카우’도 지난 9월 말 재단장을 마쳤다. 과거 뮤직카우 음원 투자는 뮤직카우가 음원 저작권자에게 저작권을 매입한 뒤 ‘저작권료 참여 청구권’을 투자자에게 경매 형식으로 쪼개 팔아 저작권 수익을 나눠 받을 수 있게 하는 모델이었다. 투자자끼리도 권리를 거래할 수 있다. 뮤직카우는 경매 차익과 거래 수수료를 받았다.

그러다 지난해 초 위법성 논란이 불거졌다. 이와 함께 뮤직카우가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발행하고 유통하는 것이 ‘증권’인지를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이에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4월 뮤직카우의 저작권료 참여 청구권은 투자증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뮤직카우는 자본시장법상 규제를 받게 됐다.

이후 뮤직카우는 키움증권과 손잡고 기존 저작권료 참여 청구권으로 거래됐던 음악 1084곡을 한국예탁결제원에 전자 등록하고 ‘음악수익증권’으로 바꿔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고객은 증권 계좌가 있어야 음원수익증권을 거래할 수 있고, 예치금은 키움증권에 개설되는 고객 명의 증권 계좌에 입금돼 보호되는 식이다. 과거에는 투자자 예치금을 금융기관에 신탁하지 않고 플랫폼 내부에 예치했다. 음악수익증권은 지난 9월 25일 오전 9시부터 뮤직카우 앱에서 사고팔 수 있게 됐다.

2030년 토큰증권 시장 규모 367조원

금융업계에서도 조각 투자를 비롯한 비정형적 투자 시장을 새로운 먹거리로 보고 관심을 갖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발표한 글로벌 시장 전망을 토대로 국내 토큰증권 시장이 2024년 34조원을 시작으로 2030년에는 367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리서치 기업 셀렌트 조사에서는 기관 투자자 91%가 조각 투자 기업에 대한 투자 의향을 밝히기도 했다.

증권사들은 시장 선점을 위해 조각 투자 업체와 적극 협업하고 있다.

키움증권은 최근 테사와 협업해 계좌 연동 시스템을 열었고, 한국투자증권은 금융사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토큰증권 발행 인프라 구축을 완료했다. KB증권과 신한투자증권, NH투자증권은 토큰증권 시장 공동 진출을 위해 증권사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로 했다.

다만 장밋빛 전망에도 넘어야 할 산은 남아 있다. 금융당국이 미술품과 한우 등 5개 조각 투자 업체 서비스를 투자계약증권으로 판단하고, 증권신고서 제출 시 투자 상품을 발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지만, 실제 상품 출시로 이어지기는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금융당국이 길은 터줬지만 심사는 까다롭게 하겠다는 입장이라 투자계약증권 증권신고서 제출과 수리까지는 여전히 어렵다.

‘미술품 투자계약증권 1호’를 노렸던 미술품 조각 투자 업체 투게더아트(서비스명 ‘아트투게더’)가 증권신고서 제출을 철회한 게 대표적이다. 투게더아트는 지난 9월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가 20여일 만에 자진 철회했다.

문제가 된 것은 투게더아트가 제시한 ‘스테이송61’의 가격이다. 투게더아트는 7억9920만원의 투자계약증권(만기 5년, 1회에 한해 5년 연장 가능)을 발행해 미국 작가 스탠리 휘트니 작품 스테이송61을 매입할 예정이었다. 케이옥션에서 해당 상품을 7억2000만원에 취득했고, 여기에 발행 제비용을 더해 산정했다. 하지만 투게더아트가 ‘스테이송’을 모회사인 케이옥션으로부터 취득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가격을 산정할 때 객관성을 갖추지 못했고 이해 상충 소지가 있다는 것. 상품이 미술품이다 보니 증명할 방법도 마땅찮다.

또 다른 미술품 조각 투자 업체 열매컴퍼니(아트앤가이드)도 예정했던 증권신고서 제출을 연기했다. 미술품 가격을 객관적으로 산정하는 데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 테사, 서울옥션블루(소투)도 모두 당초 9월로 잡아뒀던 증권신고서 제출 시점을 10월로 미루기로 했다.

미술업계에서는 미술품 가격 평가에 주관적·자의적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데다 감정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기관마저 적어 금융당국 눈높이를 맞추기가 만만찮을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유통 과정에서 훼손·분실·도난 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기도 어려워 이 또한 해결 과제로 꼽힌다.

한우 조각 투자 플랫폼 뱅카우(스탁키퍼)의 경우 사정이 좀 낫다. 뱅카우는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아 송아지를 산 뒤 농가에 사육을 위탁한다. 성장한 소를 경매 시장에서 팔아 차익이 나면 이를 농가와 투자자에게 일정 비율로 정산해주는 식이다. 한우나 송아지는 시장에서 형성된 시세가 있기 때문에 가격을 산정하는 방식이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약 2년 전인 2021년 10월 투자자를 모집해 비싼 값에 송아지를 매입 사육했으나 최근 한우 시세가 매입 당시보다 하락해 시장 실망이 컸다. 지난 추석 연휴 전 한우가 출하돼 투자자에게 수익이 배분·청산됐는데 1+ 등급을 받은 소(거세우)의 지분을 가진 투자자는 8% 정도 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연으로 환산하면 4% 수준 수익률이다. 펀딩 당시 회사가 홍보했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도 1+ 등급 이상을 받은 한우는 수익금을 쥐었으나 1등급 이하를 받은 한우 중에 손실이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0호 (2023.10.18~2023.10.24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