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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 공시전 '무차입 공매도' 쏟아내…불법 매매 80%가 외국인

김정범 기자
입력 : 
2023-05-01 17:37:56
수정 : 
2023-05-01 20: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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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적발건수 2년새 72건
국내 기관 14건 크게 웃돌아
유상증자·임상실패 등 발표전
내부정보 빼내 공매도 투자혐의
불법거래 벌금 상한선 크게 높여
외국계 증권사 등 60억 과징금
◆ 불법공매도 대규모 적발 ◆
사진설명
올 들어 증시 회복과 맞물리며 국내 공매도 거래가 늘어나는 가운데 외국계 투자자를 중심으로 불법 공매도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공매도 시장이 여전히 외국인 투자자의 놀이터라는 비난이 이어지면서 금융당국도 제재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최근 SG증권발 무더기 하한가 사태가 공매도 세력과 연루됐을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금융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원성이 쏟아지자 지난해 6월 공매도 조사 전담조직을 신설했다. 이후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전담조직 설치 이후 무차입 공매도 33건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적극적인 제재 조치를 취했다. 이 가운데 고의적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실시한 외국계 투자회사 2곳에는 60억5000만원이라는 높은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불공정 거래 발생 시 벌금 상한액이 종전 1억원 수준이던 것을 수십억 원으로 크게 높인 이후 나온 조치여서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이들 외국계 투자회사는 특정 종목 주식을 소유하지 않은 상태로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 규모 매도 주문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존 무차입 공매도는 종목 코드를 잘못 입력하거나 차입 주식 수량을 잘못 입력한 착오 사례가 다수였다"며 "하지만 이번에 적발한 사례는 차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의로 매도 주문을 제출해 매매차익을 극대화했다"고 설명했다. 올 초 이후 4월까지 무차입 공매도 위반 건수는 52건이었는데, 그중 외국인 투자자 위반 건수가 41건으로 80%를 차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금감원 조사 과정에서 주가를 하락시키기 위해 스왑 거래를 이용한 불법 공매도 혐의 또한 포착됐다.

스왑 거래는 외국계 헤지펀드가 주로 이용하는 증권사에 수수료를 주고 공매도 주문을 내는 방식이다. 증권사와 공매도 투자자 간 거래는 대부분 총수익스왑(TRS)으로 이뤄진다. 사전에 주가가 하락할 만한 악재성 정보를 취득해 자기 자본보다 몇 배 많은 금액을 빌리는 레버리지 방식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가에 악재로 작용하는 시간 외 대량 매매나 유상증자, 임상 실패 등 정보가 공개되기 전 해당 정보를 이용해 공매도한 혐의도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4월 하루 평균 공매도 규모는 코스피 6043억원, 코스닥 3561억원에 이른다. 올해 1월 평균 거래액인 코스피 3730억원, 코스닥 835억원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 건수도 올 초부터 지난달 28일까지 25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83건 대비 3배 넘게 증가했다.

올해 들어 주가가 급등하면서 연초 약 61조3012억원에 불과했던 대차거래 잔액은 지난달 28일 80조8514억원까지 급증했다. 특히 2차전지 등 과열 양상이 나타나는 종목에 대한 공매도가 덩달아 늘어났다. 공매도는 주가가 기업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치솟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지만, 반대로 주가 하락을 부추긴다는 비판에 시달려왔다. 공매도는 특정 주식 등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을 빌려서 팔고 나중에 주식으로 갚는 방식이다. 주가 하락을 예상해 주식을 남에게 빌려서 팔고, 주가가 떨어지면 다시 주식을 사들여 갚아 시세 차익을 얻는 것이다.

주식을 실제로 보유하고 있을 때 이뤄지는 차입 공매도는 불법이 아니지만, 주식을 빌리지 않은 상태에서 공매도 주문을 내는 무차입 공매도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는 불법 행위다.

한국은 공매도 규제가 강한 곳으로 꼽히지만 여전히 불법 공매도가 횡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례로 공매도 관련 업틱룰을 적용해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만 공매도를 허용해 큰손들이 인위적으로 주가 하락을 조장하는 것을 방지한다.

그뿐만 아니라 공매도 과열 종목을 지정해 공매도 규모가 크게 증가한 종목의 다음 거래일 공매도 거래를 막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종목, 업종별 공매도 거래 현황과 공매도 잔액을 공시함으로써 거래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불법 공매도가 잦아들지 않으면서 금융당국이 제재 수위를 강화하고 있다. 2020년 말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공매도 규제 위반에 대해 제재 수위를 강화했다. 이를 통해 1년 이상 징역 또는 부당이득액의 최대 5배까지 벌금 부과가 가능하도록 했다. 2010~2020년 불법 공매도로 적발된 법인 105곳 중 56곳이 주의 처분만을 받았는데, 투자자 우려가 커지면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금융당국은 악재성 정보를 이용하거나 시세조종 및 선물시장조성자의 헤지 수량을 초과한 공매도 거래를 집중 조사해왔다. 금융당국은 최근 주가가 급등락하며 변동성이 확대된 종목에 악의적인 무차입 공매도가 벌어졌는지를 적극 들여다볼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행태임에도 그간 과태료, 주의 등 미온적 조치로 제재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지속돼왔다"며 "주문금액 기준으로 강화된 과징금을 부과해 국내외 금융사의 경각심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도 불법 공매도와 같은 자본시장 불공정 거래 관련 규제를 위반해 금융당국 제재를 받은 법인과 개인 명단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외국 금융투자업자가 공매도 등 규제를 위반해도 내역과 법인명이 공개된다.

또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최대 10년간 금융투자상품 거래와 계좌 개설 등을 제한한다. 여기에는 미공개 정보 이용, 주가 조작, 부정 거래 등 3대 불공정행위를 비롯해 무차입 공매도 등도 포함됐다. 불법 공매도를 시장질서 교란행위로 보고 제재 강화 방침을 정한 것이다.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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