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밸류 부른 증권사 STO 전쟁…'부동산 토큰' 시선집중
입력 2023.04.28 07:00
    오버 밸류여도 산다…조각투자 회사에 구애하는 증권사들
    대형 증권사, 리테일 기반 토큰증권 유통 수수료 노리고
    유통-발행 시장 분리 노리는 중소형사는 발행 시장에 참전
    메리츠증권, STO 발행 대형 메기 되나…부동산PF가 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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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증권사들이 나도나도 증권형토큰(STO) 사업에 뛰어들면서 조각투자 회사들이 ‘귀한 몸’으로 떠올랐다. 증권사들은 STO 유통을 위해 조각투자 플랫폼 업체를 높은 가격에 인수하거나, 자금조달ㆍ상품화 지원 등을 약속하며 기술 제공 계약을 체결하는 상황이다. 

      증권업계에선 그간 STO 사업과 관련해 뒷짐만 지고 있던 메리츠증권의 참전까지 예상하고 있다. 특히 발행 시장의 경우 중소형 상업용 부동산을 기초자산으로 한 ‘관리처분신탁 수익증권’을 분할 발행할 수 있어, 부동산금융 거래 실적이 많은 메리츠증권이 큰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6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증권사들 사이에서 조각투자 플랫폼 회사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조각투자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블록체인과 분산원장 인프라를 활용해 STO 유통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다. 

      STO 경쟁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대신증권이다. 대신증권은 최근 부동산 조각투자 수익증권 플랫폼 ‘카사’를 인수해 100% 자회사로 편입했다. 인수 대금은 150~2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증권은 음원 수익 공유 플랫폼 ‘핀고컴퍼니’, 신한투자증권은 선박ㆍ항공기ㆍSOC(사회간접자본) 등 현물의 조각투자를 중계하는 ‘바이셀스탠다드’ 등과 협력하기로 했다. 조각 투자 플랫폼사들이 개발한 시스템을 활용하는 대신, 지분을 투자하거나 유ㆍ무형의 자원을 지원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밖에도 KB증권은 스탁키퍼ㆍ서울옥션블루ㆍ펀더풀ㆍ하이카이브, 키움증권은 뮤직카우ㆍ펀블, NH투자증권은 투게더아트ㆍ트레져러ㆍ그리너리 등과 토큰증권 플랫폼 표준 정립을 위한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투자업계 일각에서는 증권사들의 구애 때문에 조각투자 회사들의 밸류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한 벤처캐피탈(VC) 관계자는 “조각투자 회사들이 제대로 상장(IPO)한 사례가 없어서 밸류를 평가할 수 있는 피어그룹도 형성되지 않았는데, 금융 당국이 STO를 하려면 분산원장을 하라고 조건을 달아 놔서 기술을 가진 회사들의 몸값이 크게 뛰었다”며 “누적 적자가 너무 크고, 미래 수익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카사 인수가는 오버 밸류”라고 분석했다. 

      ‘웃돈’을 얹어줄 정도로 증권사들이 STO에 진심이라는 얘기다. 리테일 비중이 큰 대형 증권사일수록, 토큰증권(ST)을 기존 고객들에 유통하는 과정에서 중개 수수료를 얻을 수 있는 까닭이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증권사가 현물 자산을 대상으로 일종의 ‘액면 분할’을 대행하고 유통량을 늘리는 대신 얻을 수 있는 수수료가 생각보다 많을 것”이라며 “KB나 NH, 신한투자증권 같은 대형 기관만이 제공할 수 있는 유동성과 신용도가 있기 때문에 유통 시장에서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리테일 부문이 작은 중소형 증권사들은 토큰증권 발행 시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금융 당국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발행과 유통의 분리를 규정한 덕분이다. 대형사들이 리테일을 기반으로 유통을 선택하면, 중소형사는 발행 시장에 무주공산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리테일 비즈니스가 없는 한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어차피 유통 부문은 인프라 개발에 리테일까지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서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며 “금융 감독이 STO 발행과 유통 역할을 엄격하게 구분하겠다 선언한 점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미래에셋증권을 제치고 당기순이익 1위를 달성한 메리츠증권이 STO 발행 시장의 메기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부동산과 인프라 등 IB부문에서 다루는 대체자산을 기반으로 토큰증권을 발행할 경우, 자기 자본 비중이 높고 부동산PF 딜 레퍼런스가 많은 메리츠증권이 가장 유리한 까닭이다. 

      실제로 토큰 증권 가이드라인이 발행됐던 올해 초 메리츠증권은 “계획이 없다”며 선을 그었으나, 최근 다각도로 사업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메리츠증권이 나설 경우 중소형 부동산 기반의 ‘처분신탁 수익증권’을 토큰화(ST)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기준 국내 상업용 부동산 거래금액은 약 77조원 수준으로, 이중 500~5000m2 규모의 자산 비중이 약 40%를 차지한다. 

      그동안 중소형 부동산은 기관투자자 위주의 중대형 부동산 대비 유동성이 낮아 할인 거래되는 경향이 강했다. STO 시장에서 토큰으로 거래가 가능해진다면, 적정가치의 반영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신한투자증권 임희연 핀테크 부문 수석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부동산PF 딜 레퍼런스가 많고 이에 적극적인 자산 소싱이 가능 하거나, 기타 대체자산 소싱을 위한 자본 투입에 대한 부담이 없는 증권사들의 발행 경쟁력이 돋보일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부동산 금융 부문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유한 한국투자증권과 메리츠증권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