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기업

백화점 수백만원 한우·효도가전 완판 … 전통시장은 매출 반토막

글자크기 설정

명절 소비 양극화 심화
고향 대신 해외여행 많이 떠나
명절 전 부모님 고가선물 인기
수천만원대 초고가 위스키
10만원대 과일세트 잘팔려
김영란법 완화된 점도 영향
차례 안지내는 젊은세대 많고
필요한 건 인터넷서 소량 주문
"동네시장 추석 대목 벌써 끝"
◆ 추석 경기 진단 ◆
사진설명
붐비는 백화점 추석을 일주일 앞둔 22일 서울의 한 백화점 식품관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주류·한우·가전 등 고급 선물세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승환 기자
서울 송파구에 사는 30대 직장인 김주현 씨는 긴 추석 명절을 앞두고 괌 여행을 계획했다. 대구에 계신 부모님은 추석 전 주말에 미리 찾아뵙기로 했다. 김씨는 "추석에 여행을 떠나는 게 다소 신경 쓰여 백화점에서 30만원짜리 한우 선물세트를 샀다"면서 "코로나19를 거치며 명절에 꼭 다 같이 모여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는 사라진 것 같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추석을 비롯한 명절을 간소하게 보내거나 고향길에 오르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명절에는 개인 연차를 이용하면 최장 12일까지 쉴 수 있어 해외여행을 계획한 이가 많다. 그 대신 가족이나 지인에게는 선물세트로 마음을 전하는 트렌드가 빠르게 확산되는 모양새다.

2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는 친환경 한우와 와인 같은 프리미엄 세트를 포함해 사과·배 같은 실속형 세트도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매출은 지난해보다 최대 35%까지 늘어났다. 반면 전통시장은 코로나19 때와 비교해도 매출이 반 토막 수준이다. 작황 부진에 차례상 제수 품목까지 가격이 뛰어오르며 고객에게 더 외면받고 있다.

실제로 이날 주요 백화점은 이른 오전에도 추석 선물세트를 사러 온 고객들로 북적였다. 롯데, 신세계, 현대 등 백화점 3사의 선물세트 매출(예약판매 시작일부터 이달 19일까지 기준)은 작년보다 일제히 늘면서 롯데 15%, 신세계 35%, 현대 33%에 달하는 증가율을 보였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선물가액 한도가 20만원에서 30만원까지 오른 것도 매출 상승에 한몫했다.



사진설명
수천만 원에 달하는 초고가 프리미엄 상품도 줄줄이 팔리고 있다. 신세계가 선보인 2700만원짜리 스코틀랜드산 위스키 보모어 40년산, 1600만원짜리 크룩 샴페인은 추석 선물세트 본판매 시작과 함께 팔려 나갔다. 전체 한우 가운데 '상위 0.5%'로 꼽히는 1++(9)등급 암소 한우로 만든 현대의 '현대명품한우 No.9' 세트는 300만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수십 세트가 팔렸다. 롯데의 '명품 영광 법성포 굴비 GIFT 원' 400만원짜리 세트도 완판됐다.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안마의자, 음식물처리기처럼 가격이 수십만~수백만 원 하는 '효도 가전제품'도 인기다.

대형마트에서도 추석 선물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 올해 이마트 추석 선물세트는 매출이 14% 늘었고, 롯데마트도 20% 넘게 올라섰다. 이마트의 실적 견인에는 10만원대 선물세트가 영향을 미쳤다. 이 가격대 양주 선물세트는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111%나 증가했다.



사진설명
한산한 전통시장 22일 인천 모래내시장은 방문객이 줄어 장사가 잘되지 않고 있다. 명절을 간소하게 보내는 문화가 확산되고 이커머스가 보편화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김호영 기자
코로나19 이전 경기 수준으로 매출이 회복된 백화점·대형마트에 비해 전통시장은 울상이다. 상인들은 경기 침체로 체감 매출이 작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소비 채널별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은 오가는 사람이 꽤 많았지만 상인들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이곳에서 수산물을 파는 양순실 씨는 "전통시장 손님은 불경기에 더 영향을 받는다. 명절이라고 더 지갑을 열지 않는다"며 "예전에는 굴비를 사도 3만원어치, 5만원어치를 구매했다면 이제는 딱 1만원어치만 산다"고 푸념했다.

전문가들은 소비 채널 양극화가 구조적 변화이고, 특히 팬데믹 이후 전통시장 몰락이 가속화됐다고 진단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전통시장은 중저가 시장으로 분류되는데 이제 5060 주부조차 중저가 선물을 살 때 마트 아니면 이커머스를 이용한다"며 "코로나19 이후 차례를 안 지내는 사람도 많아지면서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실제 G마켓에 따르면 과일·떡·부침을 비롯한 간편 차례상은 추석 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석밥·컵밥은 46%, 떡갈비·닭갈비 같은 간편조리식품은 15% 판매가 증가하며 연휴 기간 집에서 쉬면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식품 판매가 크게 늘었다. 추석을 홀로 보내는 '혼추족'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고물가와 경기 침체 여파도 있지만, 실상 전통시장에선 수요 감소가 오래된 화두"라며 "소비 주체로 떠오른 MZ세대는 맛집 탐방 목적이 아니면 장을 보러 전통시장에 절대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홍성용 기자 / 박홍주 기자 / 이새봄 기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