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경고도, 시장 파열음도 ‘정쟁 몰두’ 국회는 귀 닫았다

이유진·김세훈 기자

③ 예견된 비극, 왜 못 막았나

지난해 5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루나·테라 사태, 원인과 대책’ 긴급 세미나에서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해 5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루나·테라 사태, 원인과 대책’ 긴급 세미나에서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21년 국회 공청회, 코인업계의 어두운 미래 내다본 듯 경고 쏟아져
‘대선 표심’ 염두에 둔 국민의힘 ‘신중론’에 투자자 보호법안 흐지부지
거래소들 무더기 폐업 때도, 테라·루나 사태 이후 열린 국감도 ‘맹탕’

“금융규제 방식은 포클레인식으로 모두 다 이렇게 엎어버리는 방식인데, 기술의 분야를 그런 식으로 규제를 하면 기술이 발전할 수 없겠지요.”(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

“이 대목이 지금 되게 좀 중요한 것 같은데요. 박선영 교수님도 같은 생각이신가요?”(민형배 의원)

“지금 한국 상황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하기 위한 의무공시제도 도입이 제일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2021년 11월16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가산자산법안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당시 국회엔 가상자산 관련 13개 법안이 발의된 상태였다. 이날 공청회에는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서동원 스테이션블록 대표이사, 윤종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기술 전도사) 등이 진술인으로 참석했다. 최근 ‘P코인’을 둘러싼 강남 납치·살해 사건, 거래소 뒷돈 상장 사건, 테라·루나 폭락 사태 등 코인업계의 어두운 미래를 내다본 듯한 이야기들이 이 자리에서 쏟아졌다.

“이대로 가면 큰일난다” 경고했지만…

정부 차원의 투자자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한 이들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보다 알트코인, 이른바 ‘잡코인’이 많은 한국 가산자산 시장의 특수성을 꼬집었다. 불확실성이 높은 알트코인에 개인투자자들이 몰려 불공정거래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발생한 ‘강남 납치·살인사건’ 배경에도 다단계 범죄 수단이 된 잡코인이 있었다.

박 교수는 “국내 발행·유통되는 가상자산 72%가 누구나 쉽게 제작 가능한 이더리움 토큰(알트코인)이고, 이는 블록체인 기술 발전이나 국가경쟁력 향상과 관련성이 높지 않다”며 “(규제로 인해 기술의) 해외 유출을 우려하는 말씀도 하셨으나 사실상 이러한 가상자산들은 기술력이 없어 해외에 상장하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연구 결과도 근거로 제시했다. 박 교수가 2021년 7월 넷째주 4대 거래소에 상장된 모든 가상자산의 백서를 분석한 결과, 347개 중 35%(123개)가 국내 발행인과 연관된 가상자산이었다. 이들 123개 코인 중 10%만이 블록체인(자체 네트워크)을 갖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자체 네트워크 없이 이더리움 등 다른 코인을 기반으로 한 ‘토큰’으로 나타났다.

김갑래 연구위원은 “가상자산 거래가 바람직하냐의 여부를 떠나 이미 너무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당시 비트코인 시가총액은 1조2390억달러로 테슬라 시가총액을 넘어섰으며,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는 587만명, 2021년 거래대금만 358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업계 측 진술인은 ‘규제 완화’를 주장하며 거세게 맞섰다. 이들은 산업 성장 측면을 고려한 ‘네거티브 규제(최소 규제)’를 주장했다. 최소 규제는 법률이나 정책으로 금지된 것이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규제를 뜻한다.

서동원 대표는 “(입법을 통한 사업자 규제는) 징벌적 규제가 아니어야 하고 가상자산 사업자 스스로가 자율적 규제 풍토를 조성하고 글로벌 가상자산이 대한민국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종수 변호사는 “(법안이 제정되면) 해외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조항을 준수하기 어려우므로 국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없어 투자자들이 해외로 탈출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정치권과 당국이 가상자산에 ‘무지’해 산업을 과도하게 규제한다는 식의 발언도 나왔다.

최화인 에반젤리스트는 “정부 내 금융규제기관에서 2017년 이후 줄기차게 가상자산의 내재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공무원 및 산하기관 직원분들께서 가상자산의 직접거래가 금지된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기술 체감도가 낮아 가상자산의 기술적 특성과 산업적 역할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규제 방식은 포클레인식으로 다 엎어버리는 방식인데, 기술의 분야를 그런 식으로 규제를 하면 기술이 발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 청문회는 가상자상법안과 관련해 국회에서 열린 처음이자 마지막 청문회가 됐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투자자 보호에 한목소리를 냈지만, 정기국회 내 법안 처리를 목표로 한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은 단계적 접근을 주장하며 신중론을 펼쳤다. 당시 언론은 법 제정을 서두르는 민주당과 심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국민의힘의 견해차를 두고 ‘대선 표심’을 위한 셈법이 배경에 있다고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가상자산 시장 활성화를 약속했다.

테라 사태에도 변죽만 울린 ‘코인 국감’

지난 5년간 국회 속기록을 살펴보면, 가상자산 관련 법안 논의는 매번 정쟁과 현안 법안에 밀렸다. 2021년까지 국정감사에서 가상자산 거래 소득에 과세하는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지만 투자자 보호를 위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21년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무더기로 폐업하자 정무위 국감에 시선이 쏠렸다. 당시 국내 1위 거래소였던 업비트는 부실 코인들을 다수 상장하고 폐지하면서 수수료를 챙기고 시장 점유율을 키웠다는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 이석우 대표의 증인 채택마저 불발돼 ‘맹탕 국감’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대장동 개발비리가 뒤덮은 그해 국감에서 가상자산을 비롯한 모든 다른 이슈는 묻혔다.

테라·루나 사태 이후 약 5개월 만에 열린 지난해 10월6일 정무위 국감은 상황이 더 참담했다. 이번에도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증인 출석 요구를 거부했다.

신현성 차이코퍼레이션 총괄은 검찰 수사를 이유로 불출석을 통보했다. 이정훈 전 빗썸 의장에 대해선 동행명령장까지 발부됐으나, 이 전 의장은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송치형 두나무 회장도 증인에서 제외됐다.

투자자들은 이날 국감장에서 구체적인 보상책이 언급되기를 기대했다. 사실상 국감장에 출석한 유일한 핵심 증인 이석우 두나무 대표는 “(테라·루나 사태로) 10일간 번 수수료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사태 이후 업비트 홈페이지를 통해 내놓았던 입장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했다.

가상자산 불공정 거래를 규제하고 이용자를 보호하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지난달 25일에야 국회 첫 문턱을 넘었다. 정무위는 국회에 계류 중이던 가상자산 관련 18개 법률안을 심사해 단일 수정안을 도출했다. 견해차가 작은 내용부터 법안을 통과시키는 ‘단계적 입법’에도 합의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김주현 금융위원장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 테라·루나 사태의 네 가지 책임 주체를 지목했다. 그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첫째, 스테이블 코인을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지지해준 정치인들, 둘째, 안전장치 없는 코인 투기판에 제도적 장치를 마련 못한 정부기관들, 그리고 상환능력을 검토하지 않고 대출해준 금융기관, 그리고 또 코인의 기술적인 문제, 부실 가능성을 보지 않고 돈벌이에만 매달린 가상화폐거래소들, 네 가지 책임 주체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이들이 피해를 분담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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