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대표들의 성공담이 주목받지만 사실은 실패하는 창업자가 훨씬 더 많습니다. 관건은 실패의 경험 중 무엇을 배워 성공의 밑거름으로 쓸 거냐일 겁니다. 박준홍 핸드허그 대표는 창업 5년차였던 2019년, 초기 투자자로부터 폐업 권유를 받았습니다. 몇년째 비즈니스모델을 찾지 못하고 사업모델 전환만 4번, 개인 빚은 10억원이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젤리크루 플랫폼을 런칭해 매출 126억원(2022년 기준)의 흑자 회사를 만들어낸 박 대표의 피벗(사업 전환) 경험과 회사 운영기를 한경 긱스(Geeks)가 소개합니다.
박준홍 핸드허그 대표.
박준홍 핸드허그 대표.
"2015년에 창업하고 본격적으로 성장세가 시작된 2020년까지 시드투자 외에 추가적인 투자유치가 없었어요." 크리에이터 커머스 플랫폼 젤리크루를 운영하는 핸드허그의 박준홍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창업 후 5년간 거쳤던 여러 시행착오를 회상하면서다. "2019년엔 시드투자했던 투자자 분이 회사 사무실에 찾아오셔서 문 닫고 잠깐 들어오라 하시더라고요. 제게 폐업을 권유하셨습니다. 본인이 시드투자한 금액은 손실처리를 하겠다고 하시면서요."

"5년 간의 시행착오가 전반적인 역량 됐다"

박 대표는 그 시절이 창업 후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당장 직원 월급 줄 돈이 없어서 개인 빚까지 끌어 쓰던 시기였다. "시드 투자를 하셨던 분이 '너는 정말 최선을 다한 것 같다. 개인 빚까지 내면서 사업을 한 건 진실성 있는 모습으로 투자자들에게 받아들여질 거다. 그러니까 폐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권유를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5년간 열심히 일했지만 사업모델이 자리잡지 못해 빚만 쌓여갔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4년 후 젤리크루는 온라인으로 월 30만명, 오프라인 매장엔 월 5만명이 방문하는 크리에이터 커머스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500여명의 크리에이터들이 셀러로 참여한다. 주요 고객은 1020 여성. 크리에이터가 만든 스티커부터 머그컵, 휴대폰 케이스 등이 인기가 많다. 젤리크루는 온·오프라인에서 판매된 상품 수익, 크리에이터와 브랜드를 연결해 발생한 제휴 매출을 크리에이터들에게 정산해 지급한다. 플랫폼 사업 초기였던 2020년 23억원이었던 매출은 2021년 51억원, 지난해엔 126억원으로 빠르게 늘었다.
젤리크루 플랫폼 구조. @핸드허그
젤리크루 플랫폼 구조. @핸드허그
올해는 1분기(1~3월) 매출만 50억원을 냈다. 올해 연 매출 목표는 300억원이다. 박 대표는 "영업이익은 2021년부터 흑자"라며 "올해는 수익성이 높은 IP 브랜드 비즈니스를 확장하면서 영업이익이 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지난해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유치를 마무리했다. 창업 후 몇년 간 투자 유치를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때와는 달라졌다.

5년간 쌓인 여러 시행착오와 실패 경험들이 자산이 됐다고 했다. "5~6년 정도 제조와 유통, 기획, 물류 등 전반적인 역량을 꽤 축적했고, 크리에이터라는 창작 집단을 기반으로 한 IP사업에 대한 준비도 오래해왔다. 그렇게 쌓았던 경험들이 시장의 성장 시점과 잘 맞았다"고 했다.

3번의 실패와 그 이유는

박 대표가 법인을 세운 건 2015년. 처음엔 제조회사와 콘텐츠 회사를 연결하는 비즈니스를 추진했다. "콘텐츠를 갖고 있는 회사는 이 콘텐츠 IP로 물건을 만들어서 팔면 되는데 왜 안 만들까 생각했다. 제조회사들은 공장이 놀고 있는 곳이 많이 있으니 이걸 연결해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콘텐츠와 커머스에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머리 속으로만 생각해 사업에 덤볐기 때문이었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콘텐츠 제작자들이 물건을 만든다고 해도 판매할 수 있는 채널이 없잖아요. 그땐 '만들기만 하면 되지 않냐'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또 제조사들 입장에서도 콘텐츠 IP홀더들과 연결을 해준다고 해서 공장을 돌릴만큼의 물량이 나오지 않아요. 이 둘을 매칭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머리로만 구상했던 논리를 사업화하려고 했던 게 문제였던 거죠."

첫 사업모델이 잘 되지 않자 박 대표는 단순 연결이 아니라 직접 상품을 제조해야겠다고 판단했다. 프로야구 구단과 K리그, 레이싱 리그의 공식 MD상품을 만들었다. 이 사업을 2~3년동안 지속했지만 기존 플레이어들과의 경쟁에 부딪혔고 시장 규모의 한계를 느꼈다. "우리가 시장을 잡고,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 어딜까 고민했어요."

그 때 떠올렸던 게 포켓몬스터 같은 캐릭터 IP를 가지고 제품을 만들어서 파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었다. 기존 유통업체, 제조업체의 벽을 뚫기가 어려웠다. 시장 유통구조가 너무 복잡했다. 박 대표는 "캐릭터 사업이라고 하면 라이선스 에이전트, 제조사, 벤더사, 소매상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유통구조가 있었다. 콘텐츠 상품들이 고객들을 많나려면 시장 안에서 너무 많은 플레이어들을 거쳐야 했다. 3000개 정도 되는 업체들이 있었고 영세한 곳도 많았다. 시장 전체를 혁신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래픽·캐릭터 크리에이터에 주목한 이유

세차례의 연이은 실패. 그 때 크리에이터라는 새로운 창작자 집단이 눈에 띄었다. 짧은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추세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보였다. "새로운 콘텐츠 창작 집단을 알게 됐고, 이 새로운 콘텐츠에 기반해 상품들의 구매가 이뤄진다면 이 새 시장을 중심으로 기존 시장을 혁신하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어요. 무조건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안에서 플레이를 해야겠다고 판단해서 MCN(다중채널네트워크·크리에이터 기획사) 비즈니스 모델로 피버팅을 했습니다."

젤리크루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크리에이터들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고 수익을 나누는 구조였다. 집중했던 크리에이터 집단은 그래픽 작가, 캐릭터 작가들이었다. 그는 "처음 창업했을 때부터 콘텐츠가 수익화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뷰티 인플루언서도 있고 패션 크리에이터도 있지만 계속 재구매가 일어나고 대중적으로 풀 수 있는 방식은 캐릭터 같은 그래픽 기반의 콘텐츠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MCN 사업도 쉽지만은 않았다. 어떤 콘텐츠가 잘 될지 MCN으로서 판단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굉장히 유의미하고 성장할 콘텐츠라고 봤는데 실제로 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되게 많았고요, 결국 판단은 대중들이 하는 거고 우리가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본질적으론 창작자분들이 저희를 통해서 돈을 벌고 인지도가 쌓이는 구조여야 하는데 오히려 저희가 창작자분들한테 의존하는 구조에 가까웠어요. 창작자들은 우리가 없어도 대중분들한테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데 굳이 우리가 필요하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 다시 MCN모델의 실패. 박 대표는 창작자들이 핸드허그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부터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생각했던 게 지금의 젤리크루 플랫폼이다. 투자자로부터 폐업권유를 받은 후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이 모델이었다. 젤리크루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플랫폼은 물론 오프라인 인프라를 까는 것이다. 판매처는 직접 발로 뛰어 확장했다. 그는 "캐릭터 상품 라이센스 사업을 해봤기 때문에 경험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바닥 영업을 했다. 다른 유명 캐릭터 상품을 매장에 깔면서 젤리크루 상품들을 옆에다 같이 소개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확보한 게 350여개의 위탁 판매처다. 젤리크루 브랜드 구축을 위해 8개의 직영 매장도 열었다.

"콘텐츠 해외에 내보내는 기업될 것"

한번 오프라인 판매 인프라를 깔아놓으니 온라인에선 자체 홍보가 됐다. 젤리크루 크리에이터들이 대부분 SNS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었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터들이 적극적으로 젤리크루 플랫폼 홍보를 했다. 젤리크루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창작자들에겐 검증이 됐다고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어서 따로 요청을 하지 않아도 입점한 사실 자체를 홍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젤리크루 크리에이터 SNS 팔로워. @핸드허그
젤리크루 크리에이터 SNS 팔로워. @핸드허그
통상적인 커머스 플랫폼과 달리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플랫폼을 알릴 수 있었던 이유라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무리하게 타깃 고객을 확장하는 전략은 배제했다. 1020 여성이라는 타깃 고객을 중심으로 이들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마케팅에 집중했다. 창업 초반에 재무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다보니 비용을 통제하면서 쓰자는 조직의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핸드허그가 최근 2년 연속 흑자를 낼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는 최근 투자시장 침체도 거꾸로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스타트업들이 성장과 재무적인 수익성을 동시에 요구받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과정들을 회사의 방향성, 비즈니스 모델과 잘 결합해 내부적으로 설정한다면 장기적으론 더 큰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대표는 핸드허그를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했다. "플랫폼과 브랜드를 기반으로 콘텐츠들을 해외에 내보내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