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카오 연내 자체 언어모델 출격 준비
국내 토종 포털·메신저 위상 흔들릴까
수익성 악화 감수하고 고군분투 한창
‘조단위’ 투자 美·中 빅테크와 견줘
韓테크 최대 연간 ‘수천억’ 투자 격차
“정부 주도 산·관·학 협력·지원 절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빅테크를 중심으로 ‘GPT 춘추전국시대’가 예고되면서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에 속했던 국내 시장도 빠르게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막대한 자금 동원력과 누적된 인공지능(AI) 기술력을 발판 삼아 ‘외산 AI’가 강력한 한국어 지원 서비스를 내놓으며 국내 시장 선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초거대 AI 사업을 주도해온 네이버와 카카오는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고도 자체 대규모 언어 모델(LLM)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두 회사는 ‘외산AI’에 맞서 각각 ‘국민포털 네이버’와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주된 사용자 매개체로 삼아 접근성을 극대화한 ‘한국형(K)-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구글 바드나 오픈AI의 챗GPT가 파운데이션 모델의 ‘성능’을 강조하고 있다면, 네이버와 카카오는 외산AI와 차별화된 지점으로 ‘한국어를 더 잘하는 AI’는 기본, ‘국내 사용자에 더 익숙한 UX(사용자 경험)’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우선 한국어에 능한 구글 바드가 등장하면서 가장 긴장하는 곳은 단연 네이버다.
네이버는 그간 하이퍼클로바(국내 최초의 네이버 초거대 AI 모델)가 ‘한국 특화’ 엔진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구글, MS에 대항해 업그레이드된 LLM ‘하이퍼클로바X’ 출격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구글이 기대 이상의 한국어 실력을 겸비한 챗봇 서비스(최신 LLM 팜2·PaLM 기반 ‘바드’)를 내놓으면서 네이버의 부담감이 커진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네이버의 차세대 AI 검색 기능으로 칭해지는 ‘서치GPT’(가칭) 도입 일정도 올 하반기로 연기됐다.

15일 본지 취재 결과 네이버는 오는 3분기에 ‘서치GPT’(가칭)를 대중 서비스로 내놓을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올 상반기 중으로 사내 임직원 대상 비공개 테스트를 진행하고, 이후 한정된 일반 이용자 대상 ‘클로즈 베타 테스트’(CBT) 를 거쳐 최종 보완된 업그레이드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다. 공식 명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네이버 사정에 정통한 IT업계 관계자는 “지난 데뷰 행사(네이버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외산AI에 비해 한국어로 ‘정확도’가 높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전 공개된 서치GPT 수준이 검색 결과에서 일부 오류를 보이는 등 불안전한 모습을 보였다”면서 “이로인해 네이버 내부에선 거의 비상 대응 체제 수준으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특히 네이버는 오는 가을 ‘네이버 모바일 앱’ 메인 화면부터 통합검색 기능까지 UI(사용자 인터페이스)·UX(사용자 경험)를 전면 교체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에 기반한 ‘버티컬 AI’서비스를 이용자 관점에서 편의성을 높인다면 늦게 출시하더라도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네이버 앱 하단에 위치한 AI 검색도구 ‘그린닷’ 자리에 사용자 관심사 및 트렌드에 따라 자동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추천피드’가 배치된다. 또 20년 가까이 서비스되어 온 네이버 통합검색 틀도 AI 검색 기반의 ‘스마트블록’(이용자 취향과 유행을 반영한 주제들로 구성된 블록 형태) 중심으로 탈바꿈된다.
이에 대해 네이버 관계자는 “현재 네이버 검색의 30% 수준인 스마트블록 기능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지금은 이용자가 일일이 키워드를 계속 검색해 나가며 원하는 정보를 얻는 구조가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AI가 이용자 개인의 선호 패턴과 관련 트랜드를 고려해 손쉽게 정보를 찾아나갈 수 있는 ‘주제별’ ‘탐색형’ 검색 중심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가 국내 이용자에 친숙한 포털 서비스라는 점에서 검색은 물론 쇼핑, 금융 등 자사 서비스와 연계한 AI 전략을 통해 일종의 ‘락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가 ‘AI 원조’ 구글에 대항에 ‘토종 AI’의 경쟁력을 갖춰나가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면, 카카오는 ‘패스트 팔로우’ 전략에 가깝다. 카카오의 AI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을 통해 자사 초거대 AI 모델인 ‘코(KO)GPT’의 차세대 버전인 ‘코GPT2.0’을 올 하반기에 내놓겠다는 계획과 동시에, 회사는 전략적으로 구글 등 빅테크와 AI 사업을 협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홍은택 카카오 대표는 지난 4일 진행된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카카오브레인에서 주도적으로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구축해나가는 동시에, 카카오는 내외부의 AI 기술을 활용한 버티컬 서비스를 빠르게 출시하는 투트랙 전략을 전개하면서 급변하는 AI 산업에서의 기회를 포착하고자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카카오가 최근 AI 기술과 클라우드 등을 기반으로 한 기업용 서비스를 담당해왔던 ‘카카오엔터프라이즈’를 대대적인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카카오브레인 등 카카오 공동체 내 다른 회사들과 혼재해 있던 AI사업 등을 교통정리해 카카오엔터프라이즈를 클라우드 전문 기업으로 재편하겠다는 전략인데, 카카오의 AI 경쟁력을 빠르게 키워나가지 않으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개로 IT업계에선 ‘대화형 서비스’인 카카오톡의 특성을 카카오가 잘 이용한다면, 향후 카카오톡에 탑재될 AI 챗봇 등이 국내 검색 지형도를 바꿀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생성AI를 한번 돌리는데 기본 100억원이 투입될 만큼 AI 기술 고도화는 온전히 자금력 싸움으로 이어진다”면서 “연간 AI 투자 규모가 최대 수천억원 대에 불과한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기업과 조단위로 움직이는 미국, 중국 등 해외 빅테크 간 경쟁 구도를 고려하면 그 어느 때보다도 정부 주도의 산·관·학 협력과 지원 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례로 올해를 AI 관련 투자 정점으로 보고 있는 카카오만 하더라도 AI, 클라우드 등 신성장 동력 사업인 ‘뉴이니셔티브’에서 최대 3000억원의 투자 비용 지출(영업손실)를 계획하고 있는데, MS가 올해 초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에 약 12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힌 것과 대비되는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