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후테크 관련 특허가 특정 산업과 기업에 편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의 절반 이상이 2차전지 등 이미 상용화된 분야에 집중됐고 화학·정유·철강 등 탄소 다배출 산업의 실적은 부진했다. 기후테크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기후변화에 적응하면서도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는 기술을 말한다.

12일 한국은행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탄소중립경제로의 길: 우리나라 기후테크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 작성에는 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이동원 실장·심세리 과장·이인로 과장·최이슬 과장 등이 참여했다.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부 / 한국은행 제공

집필진에 따르면 2011~2021년 우리나라의 기후테크 특허출원 건수는 미국(35%)·일본(27%)에 이어 세계 3위(8%) 수준이다. 국가 규모를 고려한 인구 만명 당 특허출원 건수로는 룩셈부르크(3.0건), 일본(2.3건), 스위스(2.2건)에 이은 4위(1.6건)를 기록했다.

하지만 특허 대부분이 2차전지(44%), 전기차(7%), 정보통신기술(ICT·7%) 등 이미 상용화된 분야에 집중돼있다. 2022년 기준 국내 산업 온실가스 배출량의 69.3%를 차지하는 철강·정유·화학 등 3개 업종의 특허 실적은 부진했다. 화학 및 정유공정의 기후테크 특허출원건수의 글로벌 점유율은 3.6%, 철강 및 광물공정은 2.2%에 그쳤다.

집필진은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로 정부의 지원 부족을 꼽았다. 저탄소에너지기술에 대한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2011년 3.8%에서 2021년 2.9%로 줄었다. 중국을 제외 10대 선도국 중 최하위다. 탄소세, 탄소배출권 가격, 유류세 등으로 평가하는 유효탄소가격도 평균 대비 낮아 기후테크 개발 유인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편중도 심각하다. 지난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상위 4개 기업(LG화학·30.6%, LG에너지솔루션·15.2%, 삼성전자·14.1%, LG전자·8.1%)의 기후테크 특허출원 비중은 72.1%다. 10대 선도국 평균치인 29.7%를 크게 웃돈다.

기후테크 산업의 미래를 짊어질 신생중소기업의 여건은 취약한 상태다. 우리나라의 녹색채권 발행규모는 2016∼2023년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0.30%로, 10대 선도국 평균(0.57%)보다 낮았다. 같은 기간 기후테크에 대한 벤처캐피탈 투자 규모도 GDP 대비 0.003%에 불과했다. 10대 선도국 평균 0.019%의 6분의1 수준이다.

집필진은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 연구개발(R&D) 지원 강화 ▲탄소가격제 실효성 제고 ▲벤처캐피탈 투자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특히 탄소 다배출산업의 탄소저감기술과 탄소포집·활용·저장 기술(CCUS) 등 개발 필요성이 큰 분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봤다.

최 과장은 “탄소배출 기업이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비용을 부담하도록 탄소가격제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면서 “기업이 기술 상용화 이전에 수익을 내지 못하는 ‘죽음의 계곡’을 효과적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혁신자금 공급여건을 확충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