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세대가 살아갈 세상]
M세대 2명 중 1명, 한국 경제 퇴보 전망
자산·소득·부채 등 기성세대 비해 취약
고물가·고금리에 짠테크 열풍도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자랑하는 밀레니얼세대(1980~1996년생·M세대)지만, 오늘날 이들에게 놓인 현실은 암울하다.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M세대가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치솟은 대출금리는 청년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한 사람)의 부채상환 부담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결국 개인의 노력으로는 빈부격차를 극복할 수 없다는 푸념도 나온다.
거기다 극심한 저출산·고령화 현상도 M세대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위기다. 이러한 인구구조 변화는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더불어 경제성장 잠재력을 악화시킨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25년 이후 약 2% 수준으로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M세대가 바라보는 한국경제 전망은 부정적이다. 아시아경제가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지난달 31일부터 5일까지 전국 20~6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패널조사를 실시한 결과, '미래 한국경제 전망'을 묻는 질문에 M세대의 48.5%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M세대 응답자의 35%는 '지속 퇴보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13.5%는 '빠르게 퇴보할 것'이라고 답했다. 즉 M세대 2명 중 1명은 우리 경제의 퇴보를 예측한 셈이다.
이는 기성세대와의 답변과 대비된다. 한국경제 전망에 대해 86세대(1960~1969년생)는 '지속 성장·발전할 것(33.5%)'이라고 응답한 비중이 가장 높았다. X세대(1970~1969년생)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37.2%)'으로 예측했다.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개천에서 용 난다'는 옛말
M세대가 유난히 비관적인 경제 상황을 전망하는 이유는 이들이 살아온 환경과 연관 있다. M세대는 그들의 부모세대인 86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먹을거리가 궁핍했던 과거와 달리 M세대는 비교적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디지털 혁명의 혜택도 톡톡히 누렸다. 학력 수준 또한 높다. 교육부가 2021년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한국 성인(만 25~64세)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50.7%로, OECD 평균보다 높았다. 특히 청년층(만 25~34세)은 69.8%로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한 세대지만, 역설적으로 취업은 더욱 힘들어졌다. 계속되는 취업난에 구직을 단념한 청년들도 적지 않다. 더욱이 힘들게 회사에 들어간다 해도 부모세대와 달리 자산을 증식하기 어려워졌다.
86세대가 사회초년생이던 시절 '근로자 재산형성저축'인 일명 '재형저축'이 있었다. 이는 1976년 4월 정부가 근로자의 재산 형성을 위해 만든 비과세 상품으로, 1979년 한 시중은행은 연 최고 33.1%의 이자를 지급하는 재형저축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지금처럼 금융상품이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 재형저축은 '신입사원 1호 통장'으로 불리며 사회초년생의 목돈 마련을 도왔다. 재원 부족을 이유로 1995년 폐지된 재형저축은 2013년 부활하기도 했으나, 낮은 수익률과 긴 납입 기간 등을 이유로 예전만큼의 영광을 누리진 못했다.
과거에는 은행에 돈만 맡겨도 쏠쏠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기에 기성세대는 '근면성실'의 가치를 중시했다. 어느 곳에서 일하든 열심히만 하면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간 셈이다. 그러나 M세대에게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마땅한 자산 증식 기회가 없는 상황에서 일생동안 노력해도 타고난 부(富)를 이길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져서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M세대는 개인의 경제적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집안 배경(47.3%)'을 꼽았다. 이어 ▲개인의 능력(34.7%) ▲직업(14.4%) ▲학벌(2.7%)순이었다. '집안 배경'을 1순위로 꼽은 세대는 M세대가 유일했다. 나머지 세대(86세대·X세대·Z세대)는 모두 '개인의 능력'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부모의 재력이 성공의 필수조건'이라는 일명 '수저 계급론'이 M세대에게 크게 자리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득 또한 기성세대에 비해 크게 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MZ세대의 현황과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MZ세대의 근로소득은 2000년 당시 동일 연령대보다 1.4배 높았다. 그러나 X세대(1.5배 수준)에 비해선 증가폭이 작았다. 반면 총부채의 경우 MZ세대가 2000년 같은 연령대의 4.3배에 이르러 X세대(2.4배)를 크게 웃돌았다.
일각에선 지금의 청년 세대를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로 정의한다. 실제로 청년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자산·소득·부채 등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이러한 표현이 어느 정도 현실로 증명된 셈이다.
불나방 투자…영끌·빚투에 빠진 이유
이렇다 보니 청년들은 자산 증식 수단으로 주식과 가상자산 등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근로소득만으로는 자산을 축적하기 어렵다 보니 미래를 위한 돌파구로 위험자산을 택하게 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M세대 사이에선 투자 붐이 일었다. M세대 역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경제적 사건'을 묻는 질문에 '코로나19 및 부동산 대폭등(69.8%)'를 꼽았다. M세대 바로 뒷세대인 Z세대(1997~2009년생)의 83.3%도 동일한 보기를 골랐다. 반면 86세대와 X세대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선택한 비율이 각각 55.8%, 46.5%로 가장 많았다.
코로나19 이후 초저금리 시대가 이어지고 집값이 폭등하면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빚투(빚내서 투자)', '패닉바잉(공황 구매)' 등 각종 신조어가 난무하기도 했다.
이는 M세대의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투자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저축이 미덕이었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M세대는 수익을 위해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는 게 특징이다.
'영끌'에 대한 인식이 가장 긍정적인 세대도 M세대다. '투자를 위해 영끌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M세대의 10.8%(매우 선호 1.2%·선호 9.6%)는 긍정적으로 답했다. 10%가 넘는 선호도를 보인 세대는 M세대뿐이었다.
문제는 최근 금리가 인상하면서 청년층이 부담해야 할 이자도 늘어났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30대 이하의 대출 잔액은 은행권(354조8000억원)과 2금융권(159조7000억원)을 합해 514조5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말 404조원과 비교하면 27.4% 증가한 수치다.
특히 30대 이하는 2금융권에서 평균 5413만6000원의 대출을 받고 있었다. 2019년 말(4101만원)보다 32%나 뛰었다. 은행권보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2금융권에서 1인당 평균 대출액이 높아진 것은 그만큼 이들의 금리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층은 근로소득을 통해 빚을 갚으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경기 침체로 인해 고용이 줄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짠테크' 이어 '거지방'까지…젊은 '자린고비'↑
'영끌'과 '빚투'가 할퀴고 간 자리에 고물가까지 이어지면서 최근 M세대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욜로(YOLO)'나 '플렉스(FLEX)' 같은 과시적 소비가 유행했으나, 이제는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한 '짠테크' 열풍이 불고 있는 모습이다. '짠테크'는 '짜다'와 '재테크'의 합성어로, 불필요한 소비와 낭비를 줄이고 꼭 필요한 곳에 지출한다는 의미다.
특히 절약 노하우를 서로 공유하는 '거지방'은 M세대를 중심으로 새롭게 등장한 트렌드로 볼 수 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중심으로 생겨난 '거지방'은 채팅방마다 운영규칙이 다르다. 그러나 보통 참여자들이 하루 또는 한달 예산을 정해놓고 소비를 채팅방에 기록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여기서 참여자들은 누군가 조금이라도 과한 지출을 했다고 판단되면 따끔한 질책을 보낸다. 예컨대 '코인 노래방을 가야겠다'고 말한 한 참여자에게는 "노래방은 돈 든다. 콧노래를 불러라"는 재치 있는 답변이 돌아오기도 했다.
'무지출 챌린지' 또한 '거지방'과 결이 비슷하다. 해당 챌린지는 하루 지출 0원을 목표로 극단적 절약을 추구하는 게 핵심이다. 이들은 회사에서 점심을 사 먹는 대신 도시락을 싸와 먹고, 식사 후에도 카페에 가지 않고 탕비실에 구비된 믹스 커피를 마시는 식으로 절약한다. 돈을 한 푼도 쓰지 않는 날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를 인증하기도 한다.
M세대에게 '거지방'과 '무지출챌린지'는 일종의 놀이문화다. 고물가에 좌절하기보다는 여럿이서 함께하는 '절약놀이'를 통해 고물가 상황을 함께 이겨내려 하는 셈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몇해전만 해도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시하며 '플렉스' 같은 과시적 소비를 하는 젊은층이 많았다"며 "그러나 물가와 금리가 계속 오르는 등 불확실한 경제상황이 지속하면서 이전보다 미래에 집중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많아진 것"이라고 했다. 고물가·고금리에 불경기까지 겹치는 등 경제적 상황이 악화하자 미래를 대비하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난 셈이다.
또 이 교수는 "M세대는 힘든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려는 경향이 있다"며 "지금 유행하는 '거지방', '무지출챌린지'도 SNS를 통해 동병상련을 느끼며 위안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열풍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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