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MZ세대 퇴사율이 높아 걱정이라고?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는 유능한 수군 장수였다. 9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참전했다가 이순신의 첫 전투인 옥포에서 절반이나 전사해버린다. 유능하다며? 이순신이 워낙 유별나서 그런 거고 다른 전투에서는 패한 적이 없다. 심지어 칠천량에서 원균의 수군을 완벽하게 패퇴시킨 주역이다. 눈치가 백단이라 명량에서는 엉덩이를 빼고 있다가 이순신의 위력을 재확인하고는 꽁지 빠져라 도망가는 지혜도 선보였다.

그는 확실히 유능했다. 이순신과 맞섰던 수군 장수인데 살아서 돌아갔으니 말이다. 영주 출신 조상들이 말아먹는 통에 농부의 아들로 시작했지만, 주군을 네 번이나 바꾼 끝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수하가 돼 영주로 재기한다. 도요토미 사망 후 아들을 모시다 형세가 기운다는 걸 눈치채고 적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넘어가 계속 승승장구한다. ‘주군을 일곱 번 바꾸지 않으면 무사가 아니다’는 말을 남겼다 하니 대충 알 만하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대를 이어가면서 떵떵거리며 잘살다 메이지유신 직전에 혁명파로 전향해 200년 넘게 모시고 있던 도쿠가와 가문을 공격하는 최선봉에 선다. 사무라이의 충성심? 그딴 건 소설에나 존재했다. 일본도 격변기가 오면 도도의 행동이 일반적이었다. 종신고용? 당연히 일본의 전통이 아니다.

2차대전 때 일본은 미얀마에서 하와이까지의 엄청난 영역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병력이 부족하니 멀쩡한 남자들은 죄다 군대로 끌려갔다. 그러면 공장은 누가 돌리지? 기업은 인력난에 허우적거렸다. 당시 일본은 기업 간 경쟁은 국력을 까먹는 길이라고 판단하고 산업에 독점권을 줘 교통정리를 했다. 기업들은 숙련 인력이 태부족이니 어린애들을 뽑아서 가르치며 키웠다. 업종별 독점 상태에서 특정 기업에서 배운 노하우로 이직할 방법은 없었다. 기업 입장에서도 숙련 인재들이 이직하지 않도록 묶어두는 제도를 속속 도입한다. 그게 시작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니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다. 기업은 여전히 부족한 인력을 안 빼앗기려고 그 제도를 더 강화했다. 그렇게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뿌리내리게 된 거다. 그 제도가 일제강점기에 우리에게 이식됐고, 해방 이후 인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고도성장을 하며 일본의 그 방식을 모방했다. 우리도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캘리포니아는 스페인의 식민지였는데 미국이 전쟁을 해서 빼앗은 곳이다. 그래서 동네 이름이 죄다 스페인식이고 스탠퍼드대의 독특한 기와지붕을 포함해 그들의 전통이 진하게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노동법이다. 미국의 노동법 콘퍼런스에 가면 캘리포니아 노동법 세션이 별도로 열린다. 법이 크게 달라서 그렇다. 바로 이 대목이 미국에서도 하필 실리콘밸리가 혁신에 강해진 이유다. 일단 경쟁사로 이직하는 직원에 대한 소송은 금지다. 팀 단위로 경쟁사로 도망가도 소송 금지다. ‘안 가도록 더 잘해주지 그랬냐?’라는 태도다. 그러니 기업은 어떤 팀이 통째로 사라진다고 해도 문제없이 회사가 돌아가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수밖에. 여기에다 스카우트 제의를 자주 못 받으면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까지 생기다 보니 몇 년마다 옮기는 메뚜기가 오히려 존경받는다. 이러니 매력적인 스타트업이 등장하면 도도의 눈치에 전문성까지 겸비한 인재가 우르르 몰려와 유니콘 기업을 뚝딱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투자자들이 달려들어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킨다. 혁신이 가속되는 이상한 시대가 되다 보니 그 동네의 유별난 관행이 놀라운 성공 요인이 된 거다.

인재가 없는 상황에서 선진국을 추격해야 할 때는 종신고용이 비법일 수도 있었지만 어떤 기업도 평생을 보장해줄 수 없는 파괴적 혁신의 시대엔 장애물로 바뀐다. 경력사원이란 걸 죽도록 싫어하던 일본 기업의 경력 채용 비율이 7년 새 두 배나 늘어 38%에 도달한 걸 보면 그들도 이젠 변화에 적응하려는 건가? 증가하고 있는 우리 MZ(밀레니얼+Z)세대의 퇴사율을 걱정하는데 MZ세대가 유별나거나 비정상이 절대 아니다. 일본에 배웠던 비정상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다만 빈번해지는 입·퇴사에 대응하는 기업 내부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점이 걱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