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 대형상점의 계산대. 연합뉴스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결정을 하루 앞두고 미국 인플레이션이 꾸준히 둔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가 나왔다.
현재 한미금리차가 역대 최대폭으로 벌어져 있는 가운데 미국의 긴축 기조가 멈추면,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최종금리 수준을 당분간 유지할 수 있어 한숨 돌릴 전망이다.
미 CPI 시장예상치 하회…연준 동결 전망 힘실어
미국 노동부는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기대비 4.0% 상승했다고 13일(현지시간) 밝혔다.
전달인 4월 연간 CPI 상승률 4.9%보다 둔화된 것은 물론, 시장 예상치인 4.1%보다도 0.1%포인트(p) 낮아진 셈이다.
물가가 상승기조로 접어든 지난 2021년 3월 이후 2년여 만에 최소 상승폭이기도 하다.
전월 대비로는 0.1% 올라 지난 4월(0.4%)보다도 상승률이 꺾였다.
이에 따라 미국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6월 9.1%로 20여년 만에 최고치를 찍은 후 11개월 연속 둔화세를 이어가게 됐다.
시장 전문가들은 지난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물가를 자극했지만, 올해는 지난해 기저효과에 최근 유가 등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면서 물가 하방 압력을 키웠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시간으로 내일 새벽 금리 결정
파월 연준 의장. 연합뉴스미 연준은 13~14일(현지시간)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진행 중이다.
연준은 지난해부터 고강도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10회 연속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해 연 5.0%~5.25%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시장은 최근의 물가 상승 둔화세를 감안해 연준이 1년 3개월만에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앞서 시장에서는 연간 CPI 상승률이 4.0% 내외로 떨어질 경우, 연준이 6월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한 후 향후 물가 추이를 관망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JP모건은 5월 연간 CPI 상승률이 4.0~4.2% 사이로 나오게 되면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미국 노동부가 최근 내놓은 6월 첫째 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시장의 예상치를 훌쩍 뛰어 넘는 26만1천건으로 나온 것도 연준의 금리 동결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전주 23만3천건에 비해 2만8천건 증가했고, 이는 2021년 10월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가장 많은 건수다.
신규 실업수당 청구가 많다는 것은 과열된 노동시장이 잠시 주춤하고 금리인상이 경기에 미치는 신호가 나타났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급격하게 기준금리를 끌어올린 연준에 금리동결이라는 공간을 내어줄 수 있는 지표다.
급격한 금리인상에 경기둔화 우려…고민 많던 한은도 '숨통'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에서 의사봉 두드리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공동취재단지난해 이창용 총재 취임 직후 '고물가의 고착화'를 막기 위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도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렸다.
하지만 금통위는 올해 1월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인 연 3.5%로 0.25%p 인상한 뒤, 지난달까지 3차례 연속 동결하며 고금리 효과를 지켜보고 있다.
현재 한미 금리차는 최대 1.75%p까지 벌어진 상태.
한미 금리차가 확대되면 통상적으로 안전자산인 달러화 추종 심리가 강해져 원달러 환율은 상승하고, 이는 가뜩이나 높아진 원자재 수입 가격을 끌어올려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전이되는 악순환으로 작용한다.

또 국내 금융시장에 투입된 외국 자본의 유출도 자극한다.
지속적인 한미 금리차 확대는 통화정책 당국인 한은 입장으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한미 금리차를 줄이기 위해 미국의 긴축기조를 따라 금리를 올리게 되면, 지난해 4분기 국내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후 수출도 8개월째 고전을 면치 못하는 우리 경제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FOMC가 14일 오후(현지시간) 기준금리를 동결하면, 시장은 사실상 긴축 기조가 마무리됐다고 판단해 위험자산 투자에 유연성이 발휘된다.
과거 IMF 때와 달리 우리나라 외환보유고 수준이 풍부한 만큼,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외국인 투자금 이탈 등 직접적인 영향도 크지 않은 상태다.
앞서 지난달 25일 이창용 한은 총재는 "연준이 어떻게 금리를 결정할지 불확실성이 있는 상황에서 먼저 성급하게 (연내 금리인하를) 결정하기보다 영향을 보고 결정하는 게 좋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미국 금리에 기계적으로 따라가겠다는 게 아니라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 자체가 국제 금융시장, 환율 등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FOMC가 금리를 동결할 경우 한은 입장에서는 한미금리차 확대에 대한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추가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둔화 우려도 덜 수 있어 다소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