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5월 2일 오전 11시 6분

주주가치 제고를 외치며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주주행동주의 펀드 운용사들이 당초 취지와 달리 ‘먹튀 자본’의 행태를 보이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SM엔터 장투하라"던 얼라인, 뒤에선 팔았다

장기투자 공언하고 본인 주식 매각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개인 법인인 얼라인홀딩스를 통해 보유하고 있던 SM엔터테인먼트 주식 1만 주를 지난 3월 21~24일 전량 매도했다. 매도 당시 주가 수준을 고려하면 그는 2년이 안 되는 기간에 원금 대비 두 배 이상의 투자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됐다.

이 대표의 주식 매도가 논란이 된 것은 그가 카카오와 하이브의 SM엔터 경영권 분쟁 당시 소액주주들에게 장기 투자를 여러 차례 공개 권유했기 때문이다. 분쟁 당시 카카오 편에 섰던 이 대표는 3월 7일엔 “2년 후 SM엔터 주가는 30만원까지 갈 수 있다”며 카카오의 공개매수에도 불참을 선언했다. 이로부터 닷새 후인 3월 12일 카카오의 승리가 확정됐고, 3월 말 이 대표는 SM엔터 개인 보유 지분을 처분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주식 매도 시점은 공개매수 경쟁이 끝나고 시장의 실망감이 주가에 반영된 이후”라고 해명했다.

얼라인이 SM엔터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된 후 체결한 대차거래도 도마에 올랐다. 얼라인은 3월 14일부터 4월 14일까지 한 달간 보유 중인 SM엔터 주식 전량(22만 주)을 대차 거래로 빌려줬다. 대차거래로 빌려준 주식은 대부분 공매도에 쓰인다. 이 대표는 “고객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주가를 끌어 올려 수익을 내려고 회사 지분을 사들인 펀드가 수수료를 벌려고 공매도 세력에 주식을 빌려주는 게 말이 되냐”며 “일반적인 행동주의 펀드라면 생각하지 못할 행위”고 비판했다.

행동주의 펀드 ‘불신’으로 번지나

행동주의 펀드의 비슷한 먹튀 논란은 작년 말에도 있었다. KIB프라이빗에쿼티(KIB PE)는 지난해 12월 장기 투자를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내걸고 주방용 전자기기업체인 자이글 지분 5.03%를 매집했다. 하지만 올 3월부터 자이글 주식을 내다 팔고 있다. 자이글이 배터리사업 진출을 발표하면서 주가가 급등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진희 자이글 대표는 “KIB가 일본 진출 등을 제안해 처음엔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며 “하지만 주가가 오르니 예고 없이 차익을 실현하고 나가 굉장히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에서 행동주의 펀드는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기업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주주제안을 하면서 주주환원율 개선, 주가 상승 등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먹튀 자본의 행태가 잇따를 경우 행동주의 펀드 전반의 신뢰성과 명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차준호/류은혁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