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이아이’( DEI, Diversity·Equity·Inclusion,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이하 다양성) 정책의 기원은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운동의 성과로 1964년 탄생한 민권법은 인종·종교·성별·피부색·출신국을 기반으로 한 고용 차별을 금지했다. 공립학교와 도서관 같은 공공장소에서의 분리도 금지했다.
민권법이 금지한 직장에서의 차별을 조사하고 규제하기 위해 ‘고용기회균등위원회’(EEOC)라는 정부기구가 설립됐다. 1970~1980년대 많은 노동자가 이 기구에 직장 내 차별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기업들은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차별적 관행을 바로잡으려 나서게 됐고, 이것이 다양성 정책 확립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런 흐름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한차례 시련을 겪었다. 레이건은 고용기회균등위원회를 불필요한 규제로 봤다. 예산을 삭감하고 인원을 줄였다. 기업과 노동자 간의 문제이니 양쪽이 자율적으로 해결하라는 게 레이건 정부의 기조였다.
2020년 5월 미니애폴리스 경찰에 의해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살해된 사건은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대규모 시위와 논의를 촉발했다. 기업, 학교, 정부기관 등에서 다양성 정책을 재정비하거나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대기업 중심으로 다양성 정책을 전담하는 조직이 많이 생겨났다. 소수인종 직원의 고위직 진출 장애 요인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 마련에 나섰고, 협력업체 선정 때 소수인종·여성·장애인·재향군인이 운영하는 업체를 우선 고려하는 ‘공급망 다양성’ 프로그램도 다수 도입됐다. 학교에선 흑인의 역사와 인종차별 문제 등을 다루는 과목이 신설되거나 확충됐다. 소수인종 학생을 지원하려는 목적의 특화 장학금이 신설되기도 했다. 인종차별 논란이 있는 기업들은 강력한 불매운동에 부딪히기도 했다.
보수층의 반발은 다양한 층위에서 진행됐다. 미국 언론 매체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의 집계에 따르면 2023년 이후 고등교육기관의 다양성 정책 프로그램을 겨냥해 28개 주와 연방의회에서 반다양성 정책 법안 81건이 발의됐다. 텍사스와 플로리다 등에서는 8건이 실제 법으로 제정됐다. 2023년 연방대법원의 ‘적극적 차별시정조처’(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판단은 백래시의 정점을 찍었다.
기업인들도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빌 애크먼은 올해 초 “다양성 정책은 본질적으로 인종차별적이고 불법적인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도 “다양성 정책은 인종차별의 또다른 표현일 뿐이다. 비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불법적이기도 하다”며 “다양성 정책은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DEI must DIE)고 말하며 반발에 힘을 보탰다. 머스크의 이런 태도는 향후 트럼프 지지로 이어지며 대선 전후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동하기도 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