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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코로나 때 입학한 대학생들 … 연애는커녕 '스몰토크'도 안된다

서정원 기자
입력 : 
2023-12-08 17: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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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와서야 '관계 걸음마'
학원 다니느라 친구 못사귀고
코로나 거치며 비대면에 익숙
전화통화 부담돼 문자로 소통
대학에 학사문의 부모가 대신
"본인이 직접 하세요" 공지도
美대학도 스몰토크 강좌 개설
◆ 관계포비아 ◆
사진설명
굳이 학교 수업을 통해 '공부'해야 할 만큼 학생들 대인관계는 심각한 상태다. 소셜 스킬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관계를 이어가려는 의지조차 박약하다고 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겪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상징적이다.

"어느 날 연구실로 전화가 왔어요. 다짜고짜 '오늘 수업 못 들어갑니다' 이러더군요. 어떤 수업인지도, 본인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은 채로 말이죠. 그래서 '어디세요?'라고 물었더니 뭐라고 답했는지 아세요? '집입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딴에는 출석이 급하니까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것이죠. 통화가 끝나고 상황이 재미있어서 한참을 웃었답니다. 하하."

코로나19 시기 직전에 겪은 일이고, 코로나19 이후에는 더 심해졌다고 한다. 그래도 직접 통화를 하는 것은 나은 편이다. 전화로 실시간 대화하는 것조차 버거워 문자 같은 텍스트로 소통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구인·구직 포털 알바천국이 최근 MZ세대 149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콜 포비아' 증상을 겪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35.6%다. 작년 대비 5.7%포인트 늘었다.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받지 않는다(39.2%)거나, 전화 통화는 최소화하고 이메일·문자로 소통(28.8%)하는 게 해결 방법(복수응답 허용)으로 꼽혔다.

출결처럼 기본적인 학사 문의조차 대학생 본인이 아니라 부모가 대신해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학부모 문의가 너무 많은 나머지 '학사 관련 문의는 학부모님이 아닌 본인이 직접 해주세요. 스스로의 힘을 믿습니다'라고 공지한 한 대학 사례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관계 포비아(관계 두려움증)' 수준에 이르렀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곽 교수는 "학생들 고민을 들어보면 대인관계와 관련된 문제가 많다"며 "'내가 저 사람에게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고, 어떤 식으로 얘기를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관계의 최고봉인 연애는 엄두조차 못 낸다. 한의숭 전남대 교수는 "이성 간 관계의 출발이 되는 연애를 시작하려는 시도조차 망설이는 사람이 많다"며 "수강자의 올바른 연애 가치관 정립을 돕고, 보다 개방적인 의사소통과 인간관계 기술 함양을 돕는 게 '연애의 첫 단추' 강의 목표"라고 했다.

가정·또래집단 내 1차적 사회화 부재도 '관계 포비아' 원인으로 꼽힌다. 출산율이 낮아지며 가정 내에서는 대부분 외동으로 자라 형제자매끼리 다툴 일이 없었고, 입시 위주 교육으로 중·고등학생 시절에 교우관계를 쌓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요즘 세대는 1차적 사회화 경험이 거의 없다"면서 "타인과 제대로 처음 관계를 맺는 시기가 대학생 때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사람과 대면할 필요가 많이 없어진 탓도 있다. 특히 코로나19 시기에 일상의 비대면화를 거치면서 추세는 더 굳어졌다. 식당에서 사람이 아니라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하고, 전화가 아니라 휴대폰을 통해 배달을 시키고, 무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혼자 밥을 먹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학교 학생식당은 아예 '혼밥'을 할 수 있도록 1인석이 일반화돼 있다. 김성문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지금 대학생들은 사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고교 시절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보냈다"며 "관계 맺음에 있어 고교 때 충분히 겪었어야 하는 시행착오를 하지 못하고 대학 때 해야 하는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스몰토크(가볍고 일상적인 대화)의 나라'로 불리는 미국마저 코로나19가 영향을 미쳤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1월 21일자 1면에 "대학 강의에서 '어린 성인'들에게 스몰토크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썼다. WSJ는 "학과를 막론하고 대학 교수들이 스몰토크가 잃어버린 언어가 되지 않도록 막고 있다"며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말하기를 가르치는 롤린스대, 캘리포니아공대, 이스턴워싱턴대, 리치먼드대 사례를 소개했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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