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이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골드러시할 때 정작 돈을 번 사람들은 곡괭이와 청바지를 판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생성 인공지능(AI) 붐 속에서 당장 자체 AI를 만들기보다는 다양한 AI를 고객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 생각입니다.”
24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마테오에 위치한 센드버드 본사에서 만난 김동신(43) 센드버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센드버드는 실리콘밸리 한인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1호로, 기업들에 챗봇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클라우드를 통해 제공하는 업체다. 기업들은 챗봇 서비스를 자체 개발하지 않고 센드버드 서비스를 손쉽게 갖다 붙일 수 있다. 핀테크 업체 페이팔, 배달앱 도어대시, 미 약국 체인 월그린 등 1200여 기업을 유료 고객으로 두고 있다. 월 3억명이 센드버드의 API로 만든 챗봇을 쓴다. 기업가치는 10억5000만달러(약 1조4000억원)다.
최근 센드버드는 개발자가 손쉽게 챗GPT 같은 AI형 챗봇을 구현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클릭 몇 번만 하면 기존 사용하던 챗봇에 바로 오픈AI의 ‘챗GPT’나 구글 ‘바드’ 같은 생성 AI가 실행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생성 AI 열풍이 불면서, 기업 고객들이 챗GPT를 센드버드 제품에서 어떻게 쓸 수 있는지 많이 물어오고 있다”며 “챗GPT를 통해 고객과의 채팅 상담 내용을 요약해주고, 상담사들이 자연스러운 영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실시간 변환해주는 기능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최근 AI챗봇 서비스가 우후죽순 쏟아지는 가운데 김 대표는 “한 업체가 AI 시장을 독식하는 형태라기보다는 영업 전문 AI, 상담 전문 AI, 인사 관리 전문 AI, 헬스케어 전문 AI 등 특화된 AI 서비스가 다양하게 등장해 시장에 자리 잡을 것”이라고 했다. 센드버드도 AI 시대를 기회로 보고 있다. 그는 “우리의 강점은 사실 챗봇 API가 아니라 챗봇을 통해 오고 가는 방대한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관리, 운영하는 인프라스트럭처(기반 구조)”라며 “개발자들이 챗GPT를 통해 프로그램 코딩을 더 쉽게 할 수 있고, 자사 제품과 센드버드를 연동하는 것도 더욱 원활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AI를 토대로 ‘완벽한 맞춤형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머지않아 개별 사용자에게 완벽하게 개인화된 ‘초개인화(hyper personalized) 서비스’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똑같은 주소의 웹사이트에 들어가도 대리급과 과장급, 사장급에게 보이는 정보가 완전히 다르게 구현되는 식이다.
김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게임회사 엔씨소프트에서 3년간 개발자로 일했다. 2007년 게임사 파프리카랩을 창업했고, 2012년엔 육아 커뮤니티 업체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그는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원활하게 지원하기 위해 채팅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세 번째 창업인 센드버드의 시초가 됐다.
실리콘밸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2017년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과 계약을 따내려, 첫 미팅을 마치자마자 그와 직원들은 매일 새벽 레딧 건물로 출근해 가장 마지막에 퇴근했다. 30군데의 투자사를 찾아가 29번 거절당했지만 굴하지 않고 계속 달려들었다. 이런 노하우를 후배 창업자들과 나누는 데도 적극적이다. 평일 밤 11시 이후나, 일요일 저녁이면 한국의 초기 창업자들과 통화를 한다. 김 대표는 “체질적으로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 보니, 창업 초기 내가 했던 ‘삽질’을 후배 창업자들이 똑같이 하는 것을 보면 괴롭다”며 “창업 초기에 여러 곳에서 도움받았던 것을 이런 식으로 갚으려 한다”고 했다.
그는 “후배 창업자들에게 ‘반드시 글로벌 진출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만큼, 국내 시장에만 안주하면 실패의 위험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인구 감소 속에서 기업들이 글로벌 진출을 하지 않으면 다 죽고, 한국 경제도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다”며 “빠르면 5년 내에 지구상 모든 인터넷 이용자와 맞먹는 하루 10억명의 이용자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