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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여파로 수요 ‘뚝’… 역전세난 시달리는 ‘갭투자’ 빌라

입력 : 2023-04-24 06:00:00 수정 : 2023-04-24 08: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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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건 중 804건 종전보다 내려
전세사기 피해 강서구 61% 달해

반환보증 사고 금액 규모 7974억
전분기比 3.3배 ↑… 다가구 절반
갭투자 최다 지역은 ‘서울 강서구’

올해 1분기 서울 빌라 전세 거래 중 절반 이상이 하락 거래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셋값이 꾸준히 하락하는 가운데 전세사기 여파에 더해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까지 본격화하면서 전세보증 사고가 급증하는 상황이다.

 

23일 부동산R114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통해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서울 연립·다세대의 순수 전세 거래 가격을 비교한 결과, 조사 대상 1471건 중 804건(55%)은 종전 거래보다 금액이 내려간 하락 거래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동일 단지, 동일 면적에서 전세 계약이 체결된 단지를 대상으로 가격을 비교한 결과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 연합뉴스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이 많아 전셋값이 하락했던 은평구와 강남구, 서초구의 경우에는 빌라 전셋값도 같이 내려가면서 하락 거래 비중이 컸다. 은평구는 전세 81건 중 54건(67%)이 하락 거래였고, 강남구는 55건 중 34건(62%), 서초구 72건 중 43건(60%)이 직전 분기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된 강서구도 61%(153건 중 94건)로 하락 거래 비중이 큰 편이었다.

 

역전세난이 점차 심화하면서 집주인이 제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전국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전세 수요가 빌라에서 아파트로 옮겨가고 있고 전세사기와 역전세, 깡통전세 우려로 빌라 전셋값 약세가 이어지면서 역전세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며 “전세보증금 미반환에 따른 갈등과 보증사고가 늘어날 수 있어 역전세 우려 지역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례는 이미 급등세를 탄 상황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액 규모는 모두 7974억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다였다. 지난해 4분기(2393억원)의 3.3배에 달하는 수치다.

 

보증사고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한 뒤 전세 계약 해지나 종료 후 1개월 안에 세입자가 보증금을 되돌려받지 못한 경우, 전세 계약 기간 중 경매나 공매가 이뤄진 뒤 보증금을 받지 못한 경우에 해당된다.

주택 유형별로는 다가구 주택이 3928억원으로 전체의 49.3%를 차지했다. 다가구 주택은 다세대 주택과 외형상 큰 차이는 없지만, 등기상 건물 전체를 1개의 주택으로 간주한다. 건물의 각 호별로 등기도 분리가 된 다세대 주택과 달리 집주인 1명과 계약 관계인 세입자가 다수여서 전셋값 하락기에 보증사고가 많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3년간 전국에서 가장 많은 갭투기가 발생한 지역은 서울 강서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제출된 주택자금 조달계획서상 전세가율 80%를 넘는 갭투자 거래는 모두 12만1553건으로 집계됐다.

 

갭투자가 많이 발생한 곳일수록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군·구별로는 서울 강서구가 같은 기간 5910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고, 충북 청주시(5390건), 경기 부천시(4644건), 경기 고양시(3959건) 등이 뒤를 이었다.

 

강서구의 경우 전체 갭투자 거래 5910건 중 74%인 4373건이 ‘빌라왕’ 사건이 일어났던 화곡동에 집중됐다. 강서구와 마찬가지로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됐던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의 경우에도 읍·면·동 기준으로는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1646건의 갭투자 거래가 발생했다.

◆“건축왕 2700세대 건설 허용한 법제 공백 막아야”

 

가짜 임대인을 앉히고 전세금과 주택담보대출을 동시에 받아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 주택 2700여채를 소유한 ‘건축왕’ 남모(61)씨의 사례가 경각심을 일으키면서, ‘바지 임대인’을 세우고 대출 등을 끌어 써도 제재를 하지 못하는 법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미추홀구 ‘전세사기’와 같은 유사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명의도용을 막을 법·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를 상담 중인 천호성 변호사는 “‘빌라왕’, ‘건축왕’ 사건 등에서 다른 사람 명의로 임대사업을 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며 “장기간 보증금을 받아 건물을 계속 지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이 같은 입법 부재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건물 소유자가 실소유자와 다르다면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며, 양도세 등을 내지 않고 있는데도 제재 없이 다른 부동산 소유권을 계속 취득하면서 피해자가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천 변호사는 또 “(남씨 일당 사례는) 집 짓는 과정에서 세입자 보증금을 가지고 갭투자를 한 것”이라며 “대출과 근저당 설정, 세입자 구하는 것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실제 담보가치에 비해 과하게 대출받았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부동산 평가의 경우 주택 가격이 올랐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가격이 내려가고 전반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인천시내 한 아파트 승강기에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임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다. 뉴스1

지난 21일 검찰이 국회에 제출한 공소장에 따르면 남씨는 금융권 대출로 주택을 건립하고, 세입자들의 전세금으로 대출금을 갚다가 보유 주택이 2708채까지 늘어나며 가용 자금이 부족해지자 전세보증금을 더 올려 자금을 확보하려 했다. 그러나 대출 이자 연체로 2022년 1월 11일부터 보유 부동산이 연쇄적으로 임의 경매에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일이 꼬였다.

 

사기, 부동산실명법·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남씨 측은 지난 5일 인천지법 형사1단독(부장판사 오기두) 심리로 열린 첫 재판에서 사기 혐의 등을 부인했다. 이에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그야말로 폰지사기(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 등을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 사기)”라고 비판했다. 기존 대출을 갚지 않고 전세보증금으로 신규 주택을 지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지자체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건설업자가 주택을 지었는데 분양이 안 됐으면 지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다”며 “HUG 역시 악성 임대인으로 분류하고 임대사업을 못 하도록 막았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임 교수는 시세를 부풀리는 데 가담한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에 대한 감독과 징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세입자가 전세를 구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 공인중개사인데, 수수료를 감안해 물건이 위험해도 계약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김기윤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자격증 박탈 등 공인 중개에 대한 처벌 규정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세준·김주영 기자, 윤준호·안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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