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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400조원? 세수 펑크"…정부, 계산기 다시 두드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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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올해 국세 수입(세수) 추계를 새로 한다. 400조원 넘게 세금이 들어올 것이란 기존 전망을 폐기하고, 예상 세수 규모를 줄여 잡기로 했다. 세수 부족분을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보전하는 ‘세입경정’ 압박이 커질 전망이다.

2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세수 전망은 내년도 정부 예산안 편성 일정에 맞춰 원점에서 재검토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 들어올 세액이 어느 정도일지 산출하는 과정에서 올해 세금이 얼마나 들어올지 다시 점검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 규제혁신 TF 회의에 참석해 안경을 만지며 회의를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 규제혁신 TF 회의에 참석해 안경을 만지며 회의를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기재부가 발표한 올해 예상 세수는 400조5000억원이다. 역대급 ‘세수 호황’을 누렸던 지난해(결산 기준 395조9000억원)보다도 1.2% 늘어난 액수다. 하지만 연초 실적은 정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올 1~2월 들어온 국세는 54조2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5조7000억원 급감했다. 3대 세목인 소득세(-19.7%), 부가가치세(-30%), 법인세(-17.1%) 모두 큰 폭으로 줄었다. 부동산 거래와 내수 경기, 기업 실적이 일제히 악화하면서다. “새 정부에서 한 세수 추계엔 오차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지난해 10월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발언이 공수표가 될 분위기다.

기재부는 올해 세수 추계를 다시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반기 경기가 살아나더라도 구멍 난 세수를 다 채우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기재부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짜는 5~7월 중 올해분 세수 추계 수정 작업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7월 말 윤곽이 나온다. 올해 1%대로 주저앉은 경제성장률 전망치, 전년 대비 21% 감소한 주택 거래량(국토교통부 집계, 1~2월 기준), ‘어닝 쇼크’ 수준으로 내려간 1분기 주요 기업 실적 등이 새로운 추계에 반영될 예정이다. 올해 연간 세수가 400조원을 처음 돌파한다는 당초 전망은 폐기되고, 그보다 한참 낮은 수준으로 세입 추계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재정학회 회장을 지낸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현 상황이 이어진다면 연간 20조원 이상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처음 전망했을 때보다 60조원 가까이 세금이 더 걷혀 문제였던 지난해와는 정반대 상황이다. 당시 기재부는 늘어난 세수 만큼 지출을 늘리는 내용의 추경을 편성했고, 세수 오차 책임을 물어 세제실장을 교체하는 문책성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올해 나라에서 쓰기로 약속한 예산 638조7000억원은 이미 정해져 있다. 예상보다 세금이 덜 걷히면 정부는 ①세금을 올리거나 ②정부 지출을 줄이거나 ③나랏빚을 더 내는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 증세는 불가능에 가깝다. 감세 정책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 기조와 충돌하는 데다, 내년 총선도 앞두고 여론 눈치도 봐야 한다. ‘세수 펑크’를 일부나마 메우려고 추진한 유류세 인하 폭 축소 방안이 여당 반대에 막혀 무산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른 수건을 짜내는 식으로 지출 구조조정을 할 수는 있겠지만, 올해 예산은 이미 집행하기 시작한 만큼 한계가 있다. 결국 빚을 더 내 모자란 세수를 메우는 방법만 남는다. 쉽게 말해 줄어든 세수만큼 기존 지출을 구조조정하지 않는다면 국가부채가 악화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올해 세입경정을 하는 방향으로 추경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예상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세입경정이란 당초 잡은 계획보다 덜 걷힐 세금액을 미리 예산안에 반영하는 것이다. 나중에 재정 적자가 날 것을 감안하면, 덜 걷힌 세금만큼 지출 규모를 늘린 것과 같은 효과다. 모자란 재원은 국채를 발행해 메워야 한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50% 이내로 묶는다는 기재부 계획도 물 건너갈 수 있다.

하지만 기재부는 세입경정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공식적으로는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아직 연말까지 시간이 남았고, 5월 소득세수 등 주요 세목 규모가 나와야  판단할 수 있다”며 “세입경정 얘기를 하기에는 이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한 추경호 부총리도 “세수 상황이 좋지 않으니 여기에 맞춰서 살아야 한다”며 세입경정 계획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안창남 강남대 정경학부 세무학 교수는 “올해 경기가 지난해보다 둔화한다는 경기 전망에도 정부는 올해 세수를 지난해보다 많게 예상했고, 결국 국가채무기 더 늘어나는 상황을 앞두게 됐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강제성 있는 재정준칙(정부 적자와 채무 비율을 일정 수준 이내로 관리하는 제도)이 제정돼야 하는데 국회에 계류돼 진전이 없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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