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낮춰서라도 물가 잡아야” vs “수입산 풀려 농가만 피해”[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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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농축산물 할당관세 논란

《“무 가격이 반짝 올랐다고 해서 무관세로 수입 무를 들여오겠다는 건 농가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입니다.”

17일 강동만 제주월동무연합회장은 동아일보에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다음 달부터 무, 대파, 닭고기 등 7개 품목에 할당관세를 적용해 한시적으로 관세율을 인하한다고 밝히면서 농가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할당관세는 일정 수량의 수입품에 대해 한시적으로 관세율을 낮춰 주는 제도다. 주로 특정 품목의 소비자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했을 때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활용된다. 정부에 따르면 현행 관세율이 30%인 무는 올 5월부터 6월 말까지 수입되는 물량 전체에 관세가 붙지 않는다. 20∼30%인 닭고기는 최대 3만 t까지, 27%인 대파는 5000t까지 0% 관세율이 적용된다.



● 농가 “무관세 농축산물 수입으로 경영난 우려”
통계청 소비자물가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무 가격은 1년 전보다 16.2% 올랐다. 올 초 제주지역 한파로 3∼6월 출하량이 평년보다 28%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가격이 올랐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무를 재배하는 농민들은 “최근 무 가격 상승은 단기 한파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강 회장은 “저온창고에 저장된 무가 출하되고 있고, 봄무 파종도 완료한 상태라 자연스레 출하량은 회복될 예정”이라며 “수입 무 물량이 늘어 가격이 떨어지면 농가들은 생산비도 건지기 어려워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농가에선 정부가 이미 지난해 농축산물에 전례 없는 규모로 할당관세를 적용한 데 이어 또다시 농축산물에 무관세를 적용하자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물가 안정을 위해 소고기, 닭고기, 커피 등 당시 가격이 급등한 7개 품목의 관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했다. 한우협회 등은 당시 미국산과 호주산 소고기 10만 t을 할당관세로 들여온 것이 최근 한우 가격 폭락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14일 한우 지육(1등급) 1kg 가격은 1만4926원으로 1년 전(1만8445원)보다 19.1% 낮다.

그러나 정부는 “국내산과 외국산은 유통시장이 달라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국내산 농축산물은 가정 등에서 직접 구매하는 신선 제품이 많은 반면 외국산은 가공제품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무도 외국산 대부분은 단무지나 쌈무 등 가공제품 생산에 투입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외국산 대부분이 가공식품으로 활용되는 닭고기의 경우 지난해 7월 할당관세가 적용돼 그해 수입량이 전년 대비 54%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산 생닭(1.6kg 기준)의 연간 평균 가격은 2016원으로 전년 대비 29.8% 상승하는 등 가격이 뛰었다. 다만 양계농가에선 지난해 7월과 올 3월 연달아 할당관세 적용이 결정되면서 외국산 닭 시장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양계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7∼12월)부터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외국산 닭을 활용한 제품을 내놓고 있어 국산의 입지가 좁아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 할당관세로 지난해 수입 삼겹살 가격 7.9% ↓
전문가들은 할당관세를 통해 국내 경제 전반의 이익이 커진다는 사실은 여러 실증 분석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2021년 할당관세를 통해 국내총생산(GDP)은 2000억 원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1년 원유 등에 적용된 할당관세로 인해 늘어난 GDP 규모를 1971억 원으로 추산했다. 특히 관세율이 낮아지면서 생산자 가격은 최대 1% 떨어졌다. 분석을 진행한 송영관 KDI 선임연구위원은 “가격이 떨어지면서 소비자에게 생기는 소득 증대 효과까지 포함시키면 할당관세의 정책적 효과는 더 커질 것”이라며 “정부가 포기한 세금보다 할당관세로 나타나는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고 말했다.

올해도 6월 말까지 0% 할당관세가 적용되는 수입 돼지고기는 가격 인하 효과가 뚜렷했다. 한국소비자원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캐나다산 냉장 삼겹살의 월평균 소비자가격은 100g당 1792원이었다. 관세율이 0%로 떨어지기 직전인 6월 평균 가격보다 7.9% 하락했다. 반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이미 0%를 적용받는 미국산은 같은 기간 가격이 0.3% 올랐다. 22.5∼25%인 수입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는 지난해 7월부터 한시적으로 사라졌다.

일각에선 정부의 할당관세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5월 정부는 밀가루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연말까지 수입 밀에 대한 관세를 1.8%에서 0%로 낮췄다. 하지만 한국이 제분용 밀을 수입하는 국가들은 이미 FTA를 맺고 있어 관세가 붙지 않는다. 지난해 한국이 수입한 제분용 밀(257만8646t) 가운데 99%는 미국과 호주, 캐나다, 튀르키예, 프랑스, 독일산이었다. 지난해 수입된 제분용 밀 중에서 할당관세를 적용받은 물량은 1%도 안 된다는 얘기다.

이상현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관세를 낮춰주면 소비자들은 좀 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 이득이지만 농민 입장에선 가격 하락, 외국산과의 경쟁력 약화 등 피해를 볼 수 있다”며 “할당관세로 농민들이 보는 피해가 어느 정도 되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정부가 할 수 있는 만큼 보상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KDI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지난해 돼지고기, 밀 등에 적용한 할당관세의 효과를 분석 중이다. 정부는 법에 따라 매년 5월 말까지 전년도 할당관세 부과 실적과 결과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 주류·식품업계 “할당관세 품목 더 늘려야”
정부는 할당관세가 농가 피해로 직결되지 않도록 품목 등을 조율하고 있다. 할당관세를 적용할 때 소비재와 함께 농민의 생산비를 줄이는 생산재 품목을 넣는 방식으로 소비자와 생산자의 부담을 모두 덜 수 있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례로 오리 사육을 위해 필요한 부모 오리 격인 종오리와 종란(종오리가 낳은 알)도 할당관세 품목에 포함돼 현행 12%에서 0% 관세를 적용받게 됐는데 이런 품목은 오리 농가의 생산비를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로부터 가격 인상 자제 요청을 받고 있는 주류, 식품업계에선 할당관세 품목을 더 늘려달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수입 원재료의 관세를 낮춰 주면 그만큼 가격 인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원재료값 상승은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는 수입 곡물 품목을 늘려주면 원가가 낮아져 가격 인상 요인을 자체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그만큼 커진다”고 말했다.

특히 주류업계에선 맥아, 보리 등이 할당관세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맥주의 경우 맥아, 보리 등 원재료의 94%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 물량에 대해 30%의 관세가 붙는다. 주류업체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는데도 국내에선 관세율 혜택이 없어 맥주 업체들은 연간 200억 원이 넘는 관세를 부담해 왔다”고 말했다. 일본은 맥아와 보리에 대해선 할당관세 품목으로 지정해 0%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2011년 8월부터 2012년 말까지는 이들 품목에 관세를 매기지 않았다.


세종=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세종=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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