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뷰티에 빠지다
레이지 이코노미(lazy economy). 게으름의 경제?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맥락의 이 단어는 내 노력과 시간을 절약한다는 요즘의 시대정신을 투영한다. 팬데믹을 관통하며 총알 배송과 무료 반품 등에 젖어든 우리는 번잡스럽게 발품을 팔기보다는 모바일 검색 등으로 손품을 파는 편을 택했다. 소소하게는 배달 음식부터 수만원짜리 옷, 선물하기, 수백만원짜리 전자 제품 심지어 자동차까지 클릭 몇 번으로 결제하고 배송받는 세상이라니!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중심을 이동한 소비 패턴은 뷰티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화장품은 직접 찍어발라봐야 한다는 것도 이제 옛말. “뷰티의 판은 이미 온라인으로 넘어왔어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몇 시간 전 업로드한 피드에 어떤 뷰티 제품이 노출되면, 실시간으로 즉각 온라인 몰의 트래픽이 튈 정도로 템포가 빠릅니다. 다음 날 시간 내서 백화점으로 쇼핑을 하러 가지 않는 거예요. 원하는 게 있다면 바로 지금 손에 넣어야 하는 요즘 세대의 소비 방식이죠.” 모 뷰티 브랜드 홍보 담당자의 말이다. 이처럼 온라인 쇼핑의 간편함과 신속성, 합리성의 절묘한 공조가 주는 만족감은 대면 쇼핑의 그것을 넘어섰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 거대 쇼핑 플랫폼은 뷰티 이커머스에 이미 승부수를 던졌다. 성장이 지지부진한 신선 식품 새벽 배송 대신 부피 대비 구매 단가가 높은 뷰티와 명품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 마스크 해제로 코즈메틱 시장이 되살아나고 있는 점도 도화선이 됐다.
“전 세계적으로 코즈메틱 시장의 이커머스는 막을 수 없는 파도처럼 거세게 밀려오고 있어요. 브랜드들과 쇼핑 플랫폼들은 팬데믹 기간을 지나며 이미 이커머스로 전환할 태세를 탄탄히 갖췄어요. 올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에서도 각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살려 실제 화장품 매장에서 쇼핑하는 것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이 소개돼 화제였죠. 개인화된 아바타가 매장을 방문해 제품을 직접 시연해보고, 결제까지 하는 패턴이 머지않은 이커머스의 미래가 될 거라 예측합니다.” 부루벨코리아 메이크업 포에버 브랜드 매니저 김지희는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직접 만지고 얼굴에 발색하고, 내 피부와 텍스처의 궁합을 느끼는 등 일련의 과정 부재에서 오는 한계점은 있다. 모바일 뷰티 플랫폼 잼페이스 조은선 마케팅 총괄은 A부터 Z까지 친절하게 기술한 상세 페이지와 보다 세분화된 사용자 리뷰, AI 뷰티 매칭 서비스 그리고 커스터마이징 화장품이 이 단점을 상쇄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MZ세대 사이에선 이미 피부 타입과 퍼스널 컬러 등을 AI로 진단하고, 또 개인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취향을 저격하는 화장품을 매칭해주는 온라인 뷰티 큐레이션 툴이 각광받고 있어요. 굳이 발라보지 않아도 정밀하게 진단된 내 피부 톤, 내 피부 타입에 딱 어울리는 제품을 AI가 매칭해주고 디지털로 시연해주니, 제품 선택의 시행착오를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죠.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이 기술은 더욱 정교해질 거예요.”
이커머스로의 대전환이 이뤄지는 격동의 시대. 디지털은 이미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우리의 쇼핑 환경을 지배하고 있다. 물론 냉정한 자본주의 생태계에서 독식자와 패자의 양극화는 이미 시작된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가시밭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현재에 기민하게, 또 미래를 위해 장기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챗GPT가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한 지금 이 타이밍, 뷰티 이커머스는 너무도 중요한 기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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