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는 간단…“혼자 시험 보는 데 왜 압박 면접 받는 것 같을까”

[비즈니스 포커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요새 ‘인공지능(AI) 면접’ 보는 곳이 많더라.”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이직을 준비 중인데 어떻게 AI 면접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트렌드의 앞단에 선 직업인데 솔직히 처음 들었다. 궁금해서 취재를 시작했다.

그런데 맙소사! 채용 과정에서 AI 면접이 활용된 지는 이미 몇 년 됐다.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2018년부터 AI 채용 도구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고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문화가 퍼지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기업은 물론 공공 기관도 AI를 활용한 면접을 늘리고 있다. 단시간에 수많은 지원자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혔다.

시장의 반응은 빨랐다. AI 면접을 대비하는 학원이 생겼고 방음이 잘 되고 깔끔한 배경의 ‘방’을 대여해 주는 업체(인터뷰 룸)도 생겼다. 한마디로 취업 준비생의 새로운 골칫거리로 부상했다는 얘기다.

새로운 평가 유형을 공부하기 위해 학원을 가야 하고 인터뷰 룸을 이용해야 할까. 체험해 봤다.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된 채’로.
◆1시간, AI 면접 어땠나
시중에 활용되는 다양한 AI 면접 솔루션 중 스타트업 제네시스랩에 체험을 요청했다. 영상 면접 서비스 ‘뷰인터HR’은 현대자동차·LG그룹·현대백화점·서울시·병무청·육군‧해군‧한국자산관리공사 등 100곳 이상의 기업·기관에서 활용 중이다.

3월 27일 오후 8시30분께 ‘한국경제매거진 전용 AI 면접’을 진행했다. 돈이 드는 인터뷰 룸 대신 ‘내 방’을 면접 장소로 선택했고 세안 후 편안한 후드티를 입었다. AI 면접관이 평가하는 부분이 배경과 복장인지, 인터뷰 답변 내용인지 궁금했다. 또 부정 행위를 얼마나 잘 감지하는지도 확인하기 위해 노트북 뒤에 PC 모니터를 두고 과거 썼던 자기소개서를 띄어 뒀다.

준비는 간단했다. 노트북만 있으면 됐다. 응시 버튼을 누르자 노트북 화면에 내 얼굴(지원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본인 확인을 위해 얼굴을 촬영했고 마이크와 카메라 등 환경 점검을 진행했다.

불편함을 느낄 지원자를 고려해 ‘내 얼굴 가리기’ 기능도 있었다. 면접 중간중간 ‘내 모습’을 확인하고 바로잡기 위해 이 기능은 사용하지 않았다.

질문은 음성 지원 대신 화면 텍스트를 읽는 방식이었다. 질문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은 30초, 답변 시간은 1분 30초였다.

첫 질문이 시작됐다. 자기소개서였다.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10년 만에 보는 면접에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굳은 표정으로 결국 PC 모니터를 응시했다. ‘지원 동기’ 부분을 읽어 내려 갔다. 아뿔싸, 다 읽기도 전에 1분 30초가 흘러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노트북 화면에 비쳐진 표정은 당황 그 자체였다. 마음을 다잡을 틈도 없이 둘째 질문이 시작됐다. 이때부터는 세트 문제로 상황-행동-결과로 구성된 3가지 질문이 나왔다. 예컨대 업무나 과제 수행을 하는데 기존 지식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었는지(상황), 부족한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보완했는지(행동), 결과는 어땠고 배운 점은 무엇인지(결과)와 같은 구성이었다.

세트 초반 질문은 엉망으로 답변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답변 시간의 절반이 흐른 후 횡설수설했다. 상황-행동-결과를 나눠 설명해야 하는데 한 질문(상황)에 결과까지 답변 해버려 뒷 질문에 말이 막히거나 중복된 내용을 말했다.

망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릿속 회전이 갑자기 빨라졌다. 시간을 확인하며 답변하고 한 에피소드를 적당히 분배해 상황-행동-결과에 맞게 말했다. 침착함을 되찾자 화면 속 내 모습이 옆으로 기울어진 게 보였다. 자세를 바로 고치고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했다.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취재 중’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면접 장면 캡처를 시도했다. 그러자 면접이 종료됐다. ‘부정 행위’가 감지된다는 게 이유였다. 체험 기회는 한 번뿐이라 정말 깜짝 놀랐다. 다시 접속을 시도해 봤다. “면접은 다시 진행할 수 있지만 부정 행위가 의심돼 감점이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다시 면접을 진행하면서 다른 행위도 잡는지 궁금했다. 메모장 등을 실행했더니 바로 튕겨 나갔다. 9시 25분께 면접이 끝났다. 시험 안내 등을 포함해 1시간 가까이 진행된 셈이다.

총 25개의 문항에 답변했다. 자기소개서 1개와 6개의 세트 문제였다. 모든 세트에는 추가 질문이 있었다. 아쉬운 점은 추가 질문의 내용이 ‘나의 답변’을 듣고 답변과 관련해 질문하는 구체적인 물음은 아니었다. ‘문제 해결 과정이 얼마나 논리적이었는지’, ‘달라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식이었다.

하루 반나절 뒤 채용 담당자들이 확인하는 평가 보고서를 받았다. 총 등급은 ‘C’. 탈락할 점수였다. 결과지를 건네며 뻘쭘해 했던 회사 직원의 모습이 이해가 됐다. 아쉬운 마음에 자기 암시를 걸었다. “나는 프로다!”

AI는 커닝했던 순간을 정확히 인식했다. 평가 보고서에는 ‘부정 행위 의심(보고 읽음)’이 총평가 바로 밑에 기재돼 있었다.

평가 항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의사소통과 태도 역량을 고려하는 ‘소프트스킬 평가’와 디지털 사고 능력, 기업가형 리더십, 애자일 리더십, 파괴적 마인드셋, 디자인 마인드셋, 인간 중심 마인드셋 등 6가지 역량을 고려하는 ‘BEI 역량 평가’다.

소프트스킬 총평에선 면접에 임했던 ‘내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침착성·집중도·신뢰성 지표에는 강점을 보인 반면 논리성·자신감·활기참 지표에선 약점을 보였다. 시간을 초과하고 우물쭈물했던 부분에서 점수가 깎였다는 얘기다.

BEI 역량 평가에선 인간 중심 마인드셋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5점 만점에 3점 이상이었다. 디지털 사고 능력은 1점대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동료들과 협업을 잘하지만 최신 트렌드나 정보는 좀 부족한 지원자인 셈이다.

제네시스랩 관계자는 “각 조직에 따라 문제도, 평가 기준도 다른 알고리즘을 사용해 결과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뒷배경과 옷차림이 AI의 평가 대상은 아니다. 다만 기업마다 평과 과정에 차이가 있다”며 “채용 담당자가 따로 한 번 더 면접 영상을 확인할 경우 잡음 없는 환경이나 정돈된 옷차림이 좋은 인상을 줄 수는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 제네시스랩의 AI 면접 솔루션이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인증을 받았다. TTA는 지난해 발행한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개발 안내서’를 토대로 AI 신뢰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제네시스랩의 AI 면접 솔루션이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인증을 받았다. TTA는 지난해 발행한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개발 안내서’를 토대로 AI 신뢰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게임도 평가 기준?
AI 전형은 크게 ‘AI 면접’과 ‘AI 역량 검사’ 등 두 가지다. 앞서 체험한 AI 면접은 사람 면접관 대신 AI가 카메라를 통해 지원자의 얼굴 표정에서 감정을 추론하고 목소리 높낮이나 시선, 사용 단어, 정보 및 지식 역량 등을 분석한다.

반면 AI 역량 검사는 카메라를 켜 놓고 여러 게임이나 인성 검사 등을 진행해 평가한다. 게임에 대한 반응을 수집하고 무의식적 행동 패턴을 분석한다. 응답 반응 시간, 의사 결정 방향, 집중력 유지, 실수 회복 패턴, 학습 속도 등을 파악해 해당 직무의 우수 사원 데이터를 토대로 역량을 측정한다. 구직자들의 잠재력 평가에 초점을 맞췄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서울시는 AI 역량 검사를 만 15~39세 청년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한 달에 5번의 연습 기회를 준다. AI 역량 검사도 체험해 봤다.

역량 검사는 크게 성향 파악, 전략 게임, 영상 면접으로 구성됐다. 성향 파악은 성격유형검사(MBTI) 같은 질문지였다. 전략 게임은 가위바위보, 도형 회전하기, 숫자 누르기, 도형 순서 기억하기 등으로 구성됐는데 순발력·암기력·집중력이 필수였다. 예를 들어 가위바위보는 ‘나’와 ‘상대방’ 둘 중 한 명의 패를 보여주고 ‘내가 이기도록’, ‘상대방이 이기도록’ 등의 조건을 제시한다. 빠른 시간 내 조건을 많이 충족시켜야 한다.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AI 역량 검사.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AI 역량 검사.
◆신뢰성‧공정성 검증은 숙제
“서류 통과했더니 게임에서 탈락했다”, “AI가 뭔데 나를 떨어뜨리냐”, “AI 평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부담이다” 등의 지적이 취업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AI 채용 관련 조언 글은 조회 수가 수만 건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마다 AI 평가를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반영하는지 알 길이 없다.

한 시민 단체는 2020년 채용 과정에서 AI 솔루션을 도입한 공공 기관을 상대로 차별 위험은 없는지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2022년 7월 법원은 AI 솔루션 공급사가 공공 기관에 제공한 교육‧기능 설명자료, 업체가 수집한 응시자 개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문서, 평가하려는 직무 적합성 관련 문서, 기관과 업체 간 계약 관련 서류 등을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해외도 논란은 마찬가지다. 글로벌 기업 아마존은 2018년 AI로 이력서를 검토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가 성별 편향성 논란으로 도입이 취소되기도 했다.

AI 채용 기술에 대한 신뢰도 측정이나 공정성 검증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전문가들이 AI 채용에 대해 ‘대체재’ 아닌 ‘보완재’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 이유기도 하다.

기업 역시 AI를 채용 과정에 적용하면서도 도입 초기인 만큼 활용도를 지켜보는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해 7월부터 시작한 상시 채용(홀수 달) 때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AI를 활용한 사전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효과에 대해선 조심스럽다고 밝혔고 2020년 공개 채용부터 AI를 활용하고 있는 현대백화점은 “AI를 기반으로 인·적성 검사를 평가하고 있다. 1차 면접 전 참고 자료로 활용 중”이라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