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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트래블룰' 시행 1년…자금세탁방지 효과 있었나

트래블룰 기반 자금 이동 규모, 전체 규모의 25%뿐…'효과 부족' 지적 제기
해외 거래소가 트래블룰 도입 안한 탓…향후 도입 시 효과 개선 전망

(서울=뉴스1) 박현영 기자 | 2023-03-24 06:16 송고
트래블룰 일러스트.
트래블룰 일러스트.

국내 가상자산(암호화폐) 사업자 간 자금 이동시 송·수신인 정보를 공유하게끔 강제한 '트래블룰'이 시행 1년을 맞았다. 시행 이후 결과를 다룬 첫 지표가 발표된 가운데, 트레블룰 시스템을 기반으로 이동된 자금 규모가 예상보다 크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트래블룰 시행에 따른 자금세탁방지(AML)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추후 이 같은 상황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트래블룰을 선제적으로 도입한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트래블룰이 국내 사업자 간에만 적용되지만, 해외 거래소들이 트래블룰을 도입하고 나면 송·수신인 정보가 공유되는 자금 이동 규모가 늘어날 것이란 예측이다. 이에 따라 AML 효과도 개선될 수 있다.

◇국내 자금, 다 해외 거래소로…'트래블룰 적용' 비중 낮아

자료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
자료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지난 19일 발표한 '22년 하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래블룰 시행 이후인 지난해 하반기 국내 거래소에서 외부로 출금된 가상자산 규모는 총 30조6000억원이다. 이 중 트래블룰이 적용된 대상은 7조5000억원이다. 약 25%에 해당하는 비중이다.

트래블룰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상 조항 중 하나다. 국내법이므로 국내 사업자에 적용되며, '100만원 이상 상당의 가상자산'만이 적용 대상이다. 따라서 트래블룰 시스템 하에 이동된 7조5000억원은 국내 거래소 간 자금 이동 금액이다.
국내 거래소에서 외부로 출금된 자금 중 사전 등록(화이트리스트)된 해외 사업자 또는 개인 지갑으로 1회 100만원 이상 출금된 규모는 21조6000억원이다. 70%에 해당하는 규모다. 나머지 5%는 트래블룰이 적용되지 않는 100만원 미만 출금액이다.

21조6000억원 중 해외 사업자, 즉 해외 거래소로 출금된 규모는 19조9000억원에 달한다. 약 20조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나머지 1조7000억원만이 개인 지갑으로 출금됐다.

이는 100만원 이상을 송금한 투자자들 대부분이 해외 거래소로 자금을 보냈다는 의미다. 해외 거래소는 국내 특금법 조항인 트래블룰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트래블룰 시스템을 기반으로 이동된 자금의 비중이 25%에 불과한 이유다.

건수로 따지면 그 비중은 더 낮다. 우선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외부 출금 건 중 트래블룰이 적용되지 않는 100만원 미만 출금 건수의 비중이 상당하다. 전체 출금 건수 379만건 중 100만원 미만 출금 건수는 257만건으로, 68%에 달했다.

나머지 32%는 100만원 이상으로 트래블룰이 적용되는 자금 규모다. 그 중 진짜 트래블룰이 적용되는 출금 건수는 24만건으로, 6%에 불과했다.

트래블룰의 적용을 받지 않는 해외 사업자에게 자금을 보낸 건수가 88만건(23%)이었으며, 개인 지갑으로 보낸 건수는 10만건(3%)였다. 트래블룰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출금 건수는 극히 적은 것이다.

◇해외 거래소도 도입해야 'AML 효과' 커져

이를 두고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공들여 트래블룰 시스템을 구축했음에도 불구, 그 효과는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래블룰이 포함된 특금법은 지난 2021년 3월 25일부터 시행됐지만 트래블룰은 1년 유예돼 2022년 3월 25일부터 시행됐다. 거래소들이 트래블룰 시스템을 구축하고, 구축한 시스템을 서로 연동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트래블룰의 핵심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므로 거래소 간 시스템 연동이 필수적이다. 이에 거래소들은 크게 두 개로 연합체를 나눠 트래블룰 솔루션을 개발하고 시스템을 연동했다. 업비트를 주축으로 '베리파이바스프(Verify VASP)' 트래블룰 솔루션을 사용하는 연합체가 생겼으며 빗썸, 코인원, 코빗이 함께 세운 트래블룰 합작 법인 '코드(CODE)' 연합체도 탄생했다. 베리파이바스프와 코드의 솔루션도 서로 연동돼있다.

이처럼 연합체까지 구성했음에도 연합체 간 자금 이동 규모는 전체 이동 규모의 25%에 불과한 셈이다. 이는 국내 투자자들이 자금을 보내는 주요 채널인 '해외 거래소'가 트래블룰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지난 2019년부터 꾸준히 가상자산 사업자들에게 트래블룰 도입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FATF는 지난 2019년 이전부터 시행해온 트래블룰의 대상 범위에 공식적으로 가상자산을 추가했다.

국내 규제당국은 이 같은 FATF의 기조를 선제적으로 받아들여 특금법에 트래블룰을 도입했다. 즉, 우리나라가 빠른 편인 셈이다. FATF가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해외 거래소들의 트래블룰 도입은 예상된 수순이다.

국내 트래블룰 연합체들은 해외 거래소가 트래블룰을 준수하기 시작할 경우 해외 거래소와도 시스템을 연동하겠다는 입장이다. 해외 거래소와도 송·수신인 정보를 공유하게 되면 트래블룰 시스템을 기반으로 이동되는 자금 규모는 크게 늘어나게 된다.

업비트 연합체의 '베리파이바스프' 솔루션을 개발한 람다256 측은 블로그를 통해 "국내 거래소 간 자금 이동 추적보다는 국내 거래소와 해외 거래소 간의 자금 이동 추적이 국내 트래블룰 도입의 주요 목적"이라며 "앞으로 글로벌 대형 거래소를 기반으로 트래블룰의 성과가 누적되기 시작하면 베리파이바스프 솔루션도 더 주목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거래소와 시스템을 연동함으로써 자체 트래블룰 솔루션의 성과를 축적하겠다는 설명이다.

정지열 프로비트 자금세탁방지본부장(이사)은 "트래블룰은 '국제 공조'가 가장 기본이다. 우리나라가 먼저 시행하다보니 현재는 트래블룰이 적용된 자금 이동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FATF가 가상자산 거래소에 트래블룰을 계속 권고하고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국가 상호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게 된다"며 "DEX(탈중앙화 거래소)가 아닌 이상 해외 거래소라도 국가에 정식 등록된 거래소라면 트래블룰을 도입할 것이고, 국내 거래소와 시스템을 연동하면 트래블룰 적용에 따른 AML 효과는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hyun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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