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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도산 막아라'… 美, 'SVB 發' 금융위기 차단 총력전

입력 : 2023-03-14 06:00:00 수정 : 2023-03-13 23: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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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니처은행 예금도 지급보증
채권·주식은 보호대상서 제외
바이든 “은행 시스템 안전하다”

바이든 “관련자 사태책임 물을 것”
“세금 투입 없다” 구제금융은 일축

가상화폐 전문 시그니처銀도 폐쇄
한 주 새 3곳 파산… 시장불안 여전

WP “美 로쿠·블록파이 등도 타격”
“금리정책 잘못” 연준 책임론 제기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틀 만인 12일(현지시간) 세계 금융 중심지 뉴욕에 본사를 둔 가상화폐 전문 은행 시그니처은행까지 폐쇄되면서 글로벌 시장에 금융위기 패닉(공포) 그림자가 드리우자 조 바이든 행정부가 긴급 진화에 나섰다. 이들 은행에 맡긴 고객 돈을 보험 대상 한도와 상관없이 전액 보증하고 유동성 부족 금융기관에 자금 대출을 해준다는 대책이 골자인데, 중소형 은행 연쇄 부도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조기 불식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AFP연합뉴스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이날 저녁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SVB와 시그니처은행에 고객이 맡긴 돈을 보험 대상 한도와 상관없이 전액 보증한다고 밝혔다.

 

재무부 등은 미 연방예금보험법상 특정 은행의 파산이 광범위한 금융권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보험 한도를 초과한 예금도 보호할 수 있다는 조항에서 해법을 찾았다. 이번 조치와 관련해 연준은 은행에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새로운 기금(BTFP: Bank Term Funding Program)을 조성한다고도 밝혔다. BTFP는 특별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이다.

 

당국은 이를 통해 미국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등 담보를 내놓는 은행, 저축조합, 신용조합 등 금융기관에 1년간 자금을 대출할 계획이다. 연준은 특히 담보 가치를 시장가가 아닌 액면가로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SVB가 보유한 국채 상당량이 연준의 계속된 금리 인상 때문에 당장 매각할 경우 액면가보다 낮은 금액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한 조치다.

 

이는 특히 SVB사태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발 빠른 조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SVB를 시작으로 한 잇따른 은행 폐쇄에 시장의 공포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고객들이 예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다른 은행서도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만큼 신속하게 금융시스템 보호 조치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지난 8일 가상화폐 전문 실버게이트은행이 재정난으로 자진 청산한 뒤 SVB, 시그니처은행까지 일주일 동안 현재 미국 중소형 은행 3개가 문을 닫았다.

당국은 “예금자들은 13일부터 모든 예금에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SVB의 파산과 관련된 손실은 납세자가 부담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정부가 구제금융으로 은행을 살릴 경우 도덕적 해이 논란과 연방부채 증가 등 부작용이 있는 만큼 예금주만 살리는 방향으로 지원 범위를 국한한 것이다. 성명은 주주와 담보가 없는 채권자 일부는 보호받지 못하고,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SVB 고위 경영진이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13일 예금 보증 조치 관련 연설을 통해 “은행 시스템은 안전하다”면서 “해당 은행에 예금을 예치한 모든 고객은 오늘부터 보호받을 수 있고 돈에 접근할 수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납세자에게는 어떠한 손실도 발생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책임을 묻기 위해 책임자에게 설명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앞서 성명을 통해 은행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개입이 발표된 직후, 미 뉴욕증시 지수 선물은 일제히 상승세로 돌아섰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연방정부의 조치를 두고 SVB 사태로 노출된 균열이 시스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는 또 시차상으로 아시아의 월요일 오전 금융시장 개장을 앞두고 발표되면서 아시아 증시 시장에도 안도감을 안겼다.

바이든 ‘뱅크런’ 진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 폐쇄 이후 예금 보증 조치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해당 은행에 예금을 예치한 고객들의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정부의 진화 노력과는 별도로 스타트업 자금이 모인 SVB와 가상화폐 전문 은행 시그니처은행이 연이어 파산하면서 미국의 스타트업과 가상화폐 업계 위기가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는 높아지는 상황이다.

 

시그니처은행은 지난주 청산한 실버게이트 은행과 함께 가상화폐 거래 주요 은행으로 꼽힌다. 가상화폐 회사 간 실시간 자금 이체를 용이하게 하는 결제 네트워크를 제공해,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 예치금 가운데 가상화폐 부문 비중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자산 거품이 불어난 기술기업이나 가상화폐 관련 기업의 줄도산 우려도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SVB 파산으로 미국 최대 스트리밍 하드웨어업체인 로쿠(ROKU)가 운영하는 로쿠채널, 미국 달러 코인(USDC) 암호화폐를 발행한 가상화폐 결제 기술 회사 서클, 암호화폐 대출업체인 블록파이 등이 영향을 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위기감 확산과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스타트업과 가상화폐 업계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AP뉴시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자산 거품이 큰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이 높은 중소 규모 지역 은행에도 충격파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대출의 3분의 2가 부동산과 연관된 팩웨스트 뱅코프는 9일과 10일 이틀간 주가가 폭락했다. 같은 기간 29% 폭락한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은 최근 몇 년간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사업에 집중하면서 대출을 급속도로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부동산 담보대출 등 위험 자산에 노출된 은행과 현금 인출에 민감한 고객층을 두고 있는 은행의 주가가 급락해 거래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연준을 향한 책임론도 제기된다. 연준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제로 금리’ 정책을 필요 이상으로 고수했고, 지난해 3월에서야 첫 금리 인상을 시작한 뒤 유례없이 급격한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 은행 파산 등의 사태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연준이 오는 21∼22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당초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 스텝이 아니라 0.25%포인트를 인상하는 베이비 스텝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SVB 초고속 붕괴는 ‘스마트폰 뱅크런’ 탓?

 

보험업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맥스 조는 실리콘밸리은행(SVB) 폐쇄 전날인 지난 9일 미국 몬태나주 행사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을 경험했다.

 

버스에 함께 탄 동료들은 모두 SVB에 회사 자금을 맡긴 스타트업 창업자였고, 이들은 미친 듯이 휴대전화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두드리며 돈을 찾고 있었다. 그 역시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회사 자금을 급히 다른 은행으로 송금하려 했지만 그새 계좌가 동결되어 버렸다.

 

이번 SVB의 초고속 붕괴에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스타트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사무용 메신저 ‘슬랙’ 등 SNS에서 SVB 주가 폭락 소식 등이 빠르게 퍼져 나갔고, SNS의 특성상 허위 정보까지 함께 확산하며 투자자들의 불안을 급격히 키웠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은행 업무를 가능하게 한 스마트폰은 불안이 인출로 이어지는 시간을 줄였고, 결국 9일 SVB 영업시간 한정 인출 시도 금액이 420억달러(약 55조원)에 달했다고 WSJ는 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에 있는 로고.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신문은 인출자들을 집단 패닉(공포) 상태로 몰고 간 원인 중 하나로 ‘최악의 타이밍’을 지목했다. SVB가 채권 매도에 따른 18억달러의 손실과 이를 메꾸기 위한 증자 계획을 발표한 8일은 마침 가상화폐 전문 은행인 실버게이트가 재정난으로 청산을 선언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SNS와 스마트폰의 발전이라는 시대 변화가 사태의 심각성을 오인케 했다는 분석이다. 1983년 문을 연 SVB와 그 모기업인 SVB금융그룹이 스타트업 업계의 주요 금융기관으로 우뚝 서기까지는 40여년이 걸렸지만, 붕괴하는 데는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고 WSJ는 짚었다.

 

韓 증시 안도… “3월 빅스텝 없을 듯”

 

13일 한국 금융시장이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사태’ 후폭풍으로 ‘블랙 먼데이’를 맞이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상승국면을 보였다. 미국 재무부가 SVB 예금자 보호를 선언하는 등의 조치로 전 세계 금융시장으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화벽’을 쌓으면서다. 한국 정부도 대통령을 비롯해 경제·금융 당국 수장들이 철저 대비를 주문하며 상황 관리에 힘을 쏟았다.

 

이날 코스피는 전일 대비 0.67% 오른 2410.60에 장을 마감했다. 기관이 3077억원, 외국인이 179억원 순매수하며 장을 이끌었다. 당초 주식시장 폭락이 예상됐지만, 아시아 시장 개장을 앞두고 미국 정부가 SVB 예금을 전액 보증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며 시장 불안감을 잠재웠다.

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보다 16.01포인트(0.67%) 오른 2410.60를 나타내고 있다. 뉴스1

이 조치는 결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가 3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빅 스텝’(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연결됐다.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22.4원 내린 1301.8원에 마감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보고서에서 “이번 사태는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 여력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며 “3월 FOMC에서 금리 인상 폭이 25bp(1bp=0.01%) 수준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SVB 파산에 따른 직접적인 타격은 미미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투자공사(KIC)가 SVB 주식을 약 60억원어치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고, 삼성자산운용도 일부 펀드가 SVB 주식에 투자했지만 펀드 내 투자 비중은 0.01% 수준에 불과하다. 금감원은 국내 은행 및 비은행금융회사 모두 양호한 자본비율 등을 고려할 때 일시적 충격에 견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불확실성이 해소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미국 SVB 파산으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다”며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SVB 파산요인, 사태 진행 추이, 미 당국의 대처, 국내 금융시장 및 실물경제에 대한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라”고 지시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전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이지안·이도형·이병훈·곽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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