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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출산·부동산 버블 ‘판박이’…韓 ‘잃어버린 30년’ 日 전철 밟나 [전환점에 선 한일 경제관계]
‘저금리 시대 종언’에 부동산 시장 몰락
저출산·고령화 닮은꼴…세계 경제의 동반침체는 차이
경제 구조개혁·재정준칙 통한 건전성 강화 병행해야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경제·사회의 구조개혁과 지속적인 기술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 재정건전성 강화 등 선제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저출산·고령화와 부동산 시장의 침체 등 오늘날 우리나라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은 일본이 장기 경기침체 국면에 들어간 일본의 30년 전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오는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한일 관계 개선이 예상되지만, 일본의 실패 사례를 철저히 분석하고 대비해야 일본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음은 물론 일본을 추월하는 경제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버블로 시작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1986년부터 1990년까지 약 5년 동안 2~3배 급등한 후 1991년 가을부터 20년 넘게 장기 하락이 이어졌다. 그 후유증은 ‘20년’을 지나 ‘30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시작된 엔고로 일본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인하와 내수확대 정책에 돌입했다.

경기 부양용 저금리 정책은 일본 부동산 가격을 밀어올렸으나, 일본 중앙은행이 1989년부터 정책금리를 급속도로 올리기 시작함에 따라 1988년말 2.5% 수준이던 정책금리는 1990년 8월에 6.00%까지 치솟았다. 부동산 시장이 ‘멘붕’에 빠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하락, 일본 경제 전체가 장기 불황기에 들어섰다.

코로나 사태 이후 유동성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하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한국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행은 2018년 11월 1.75%였던 기준금리를 2020년 5월 0.50%까지 떨어뜨렸고 이때 풀린 유동성이 부동산 버블을 낳았다. 그러나 한은이 2021년 8월 0.75%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후, 2022년 7월과 10월 두 차례의 빅스텝(기준금리 0.5% 인상)을 포함해 올해 2월 현재 3.50%까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주택 가격이 급락하는 등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도 닮은꼴…같은 듯 다른 향후 전망

부동산 버블을 둘러싼 금리 정책 뿐 아니라 인구 구조에서도 한일은 닮아 있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고, ‘단카이'(전쟁 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부동산 시장 침체를 가속화했다.

일본의 1990년 1.53명이던 출산율은 부동산 붕괴 이후 2005년 1.25명으로 하락했다. 2017년 1.43명으로 상승했으나 1990년 보다 낮은 수준이다. 남성 생애미혼율(50세까지 결혼 미경험)은 1990년 5.6%에서 2015년 23.4%로 상승했다. 남성 4명 중 1명이 평생 결혼하지 않는 셈이다. 여성도 4.3%에서 14.1%로 올랐다.

한국도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추락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9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올해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18.1%에 달해 일본(28.9%)보다는 낮지만, 미국(17.9%)을 능가할 전망이다.

이처럼 일본 부동산 가격의 버블 붕괴, 인구 구조적인 현상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에서 한국도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 가격 거품이 걷히면 일본식 장기 경제침체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실물경제와 부동산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데 지금처럼 물가가 높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일본식의 부동산 장기 불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다만 일본의 과거 장기 불황이 전세계에서 특수한 사례였던 반면,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부동산 침체기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낮은 금리가 지속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것은 비슷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현재 부동산 시장 침체는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미국 금리인상에 의한 대외 환경 변화와 이에 따른 전세계적 부동산 가격 하락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이 부동산 버블 당시 부동산 가격의 담보를 100%까지 인정했다면, 한국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TI) 등 현재 주택 시장에서의 과도한 위험추구 행위를 제어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는 점도 차이점으로 꼽힌다.

[123RF]
재정준칙 마련으로 건전성 제고해야

한국 경제가 당장 일본과 같은 극심한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성장세가 향후 수년 동안 2%대 그쳐 잠재성장 능력이 하락할 전망이다.

비단 한국 뿐 아니라 세계의 장기 저성장은 코로나 재난지원금 같은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성장전략을 통한 구조혁신과 재정정책의 효율성 제고가 중요해 지는 이유이다.

근본적인 경제 체질의 개선을 위한 구조혁신을 도모하면서 생산성을 높이고 성장 능력을 강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재정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는 이른바 ‘와이즈 스펜딩(Wise Spending·현명한 예산 집행)’을 실현해야 하는 필요성이 커진다. 중장기적 차원에서 성장 능력 향상을 위해 전문적으로 재정정책을 입안하는 매커니즘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과도 궤를 같이 한다.

한국재정학회장인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쉽게 예산을 증액하고 추경 편성을 남발하는 게 언젠가부터 너무 당연시되고 있다”며 “재정 기강이 무너지면 그 국가는 파국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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