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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그림을 잘 그리길래?…삼성·애플·구글·엔비디아가 투자한 이 회사 [뉴스 쉽게보기]

박재영 기자
임형준 기자
입력 : 
2023-09-22 06:00:00
수정 : 
2023-09-24 15: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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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주식시장에 입성한 반도체 기업 하나가 화제예요. 영국에 본사를 둔 이 회사의 이름은 ‘ARM’인데요. 생소한 이름일 수 있지만 반도체 업계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는 회사죠. 삼성전자와 애플, 인텔 등 글로벌 IT 기업들도 이미 이 회사에 투자했어요.

ARM은 독보적인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요. 반도체를 만들 때 필요한 기술의 특허죠. 지금 여러분이 기사를 읽기 위해 사용 중인 스마트폰이나 PC, 노트북의 반도체에도 ARM의 특허 기술이 접목됐을 가능성이 높아요. 덕분에 이 회사는 가만히 있어도 특허 수수료가 굴러들어 온다고 해요.

주식 투자자들도 이 회사의 독보적인 경쟁력에 주목하고 있어요. ARM은 지난 14일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는데요. 상장 첫날 주가가 25% 폭등하면서 단숨에 ‘가장 핫한 반도체 회사’로 떠올랐죠.

ARM
지난 14일(현지 시간) 르네 하스 ARM 최고경영자가 나스닥 상장을 기념하는 벨을 울리고 있다. [로이터 = 연합뉴스]
ARM, 대체 어떤 회산데?

ARM이란 기업의 남다른 매력을 이해하려면 반도체 산업의 구조를 알아야 해요. 반도체의 종류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정보를 연산하고 처리하는 시스템 반도체가 있죠.

반도체 종류

시스템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어요. 반도체 설계만 하는 회사를 팹리스(Fabless), 이렇게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받아 제조하는 회사를 파운드리(Foundry)라고 부르죠. 설계와 제조를 모두 하는 회사는 종합 반도체 회사(IDM)라고 하고요.

◆ 팹리스

팹리스는 반도체를 설계하는 기술력은 있지만, 대규모 생산 공장을 보유하지 못한 기업들을 의미해요. 직접 사용하거나 혹은 판매할 반도체를 설계만 하고 생산은 다른 회사에 맡기는 거죠. 애플이 대표적인데요. 애플은 맥북이나 아이패드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설계하지만 직접 만들지는 않고 위탁 생산업체에 맡겨요.

◆ 파운드리

파운드리는 반도체 위탁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이에요. 팹리스가 만든 반도체 회로 설계도를 보고 그대로 반도체를 만드는 거죠. 대만의 ‘TSMC’라는 회사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어요.

◆ 종합 반도체 회사

종합 반도체 회사는 반도체 개발과 설계, 제조까지 자체적으로 소화하는 회사예요. 삼성전자가 대표적이죠. 삼성전자는 직접 설계한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기도 하고, 고객사가 준 반도체 회로 설계도를 보고 위탁생산하기도 해요.

반도체

그런데 ARM은 위에서 설명한 구분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특별한 회사예요. ARM은 팹리스들이 설계도를 만들 때 필요한 ‘밑그림’을 여러 장 그려놨어요. 애플 같은 팹리스들은 이 밑그림 중에 적당한 걸 가져다가 필요에 맞게 덧그리거나 색을 칠해 설계도를 완성하는 거죠.

물론 공짜는 아니에요. ARM은 이런 밑그림에 대한 특허를 여러 개 보유하고 있어요. 다른 팹리스들이 이 밑그림을 가져다 쓰려면 특허 수수료를 내야 하죠. 결국 ARM은 한 번 밑그림을 잘 그려놓기만 하면 가만히 앉아서 수수료를 받으며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거예요. 팹리스들처럼 새로운 반도체를 설계할 때마다 머리를 싸맬 이유도 없고, 파운드리처럼 열심히 공장을 돌릴 필요도 없는 거죠.

ARM의 밑그림을 사용하면 전력을 적게 사용하면서도 좋은 성능을 낼 수 있는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리는 게 중요한 모바일 기기용 반도체를 만드는 데 널리 사용되죠. 전체 스마트폰의 90% 이상, 태블릿PC의 85%가 ARM의 밑그림을 이용해 만든 반도체를 사용하고 있대요.

반도체
ARM의 남다른 매력, 난 예전에 알아봤지

영국에 본사를 둔 ARM의 주인은 일본 회사예요. 일본의 최대 IT 기업인 소프트뱅크 그룹은 지난 2016년에 ARM을 320억 달러(약 42조원)에 인수했죠. 남들보다 앞서 ARM의 매력을 알아본 소프트뱅크 그룹은 이 회사의 가치가 높아지면 매각해 차익을 거둬들일 계획이었어요.

실제로 소프트뱅크는 지난 2020년에 ARM 매각에 성공할 뻔했어요. 세계 1위 인공지능(AI)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가 사업다각화를 위해 ARM을 인수하고 싶어 했거든요. 팹리스 업체인 엔비디아는 ARM이 만든 밑그림을 사용하기 위해 매년 막대한 특허 수수료를 내왔어요. ‘이럴 거면 차라리 ARM을 사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죠.

소프트뱅크 그룹과 엔비디아는 400억 달러(약 53조원)에 ARM을 거래하기로 합의하고 계약까지 맺었는데요.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반도체 경쟁업체들이 반대하고 나섰어요. ‘공정한 경쟁’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게 그 이유죠. ‘지금 다 ARM이 만든 설계도를 쓰는데, 한 회사가 ARM을 인수해서 우리 같은 경쟁업체는 못 쓰게 하거나 가격을 크게 올려 받는다고 하면 어떡하냐?’라는 거예요.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중국 등의 정부는 ‘한 회사가 ARM을 인수하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며 이 거래를 허락하지 않았어요. 결국 지난해 초 엔비디아는 ARM 인수를 포기했죠.

엔비디아만 ARM 인수를 검토했던 게 아니에요. 지난해 10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 한국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직접 만났는데요. 당시 삼성전자의 ARM 인수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죠. 이밖에 인텔과 퀄컴, SK하이닉스 같은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들도 이 기업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바 있지만 최종 계약까진 이르지 못했어요.

손정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소프트뱅크가 매각 대신 선택한 방법

ARM 매각이 몇 차례 무산되자 소프트뱅크 그룹은 이 회사를 주식시장에 상장시키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상장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애플, 구글, 인텔, 엔비디아 등 주요 IT 기업들이 ARM 지분을 조금씩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죠.

보통 한 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했다는 건 어느 정도 사업이 안정적이거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요. 이 덕에 상장 후 주식 가격이 오르기도 하죠. 실제로 상장 첫날 ARM의 주가가 25%나 오르면서 소프트뱅크 그룹은 보유 중인 주식을 비싼 가격에 팔아 차익을 남길 수 있게 됐고요.

다만 상장 첫날 ‘대박’ 이후 ARM의 주가는 주춤하는 모양새예요. 소프트뱅크 그룹은 투자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매각 타이밍을 고민하고 있을 텐데요. 남다른 매력을 지닌 ARM의 주가는 더 상승할 수 있을까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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