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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비 폭등인데 ‘물가’ 제자리?…체감과 거리 먼 ‘지수’ 왜 산출할까

알쏭달쏭 ‘근원물가지수’ 해부

소비자물가서 변동성 큰 항목 제외
기초 경제 흐름 파악 가능하게 해
미 연준 ‘기준금리 결정’에도 영향

요즘 경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물가지수가 ‘근원물가지수’다. 지난달 난방비가 폭등하면서 서민들은 물가 인상을 체감하고 있지만, 근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근원물가지수는 계절적인 요인이나 일시적 충격에 가격이 영향을 크게 받는 품목을 집계 목록에서 제외해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 때문에 난방비는 근원물가지수 산정에서 제외돼 체감물가와 괴리감이 생겼다.

정부가 안정화 목표로 보고 있는 물가지수는 난방비가 포함된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다. 체감물가와 비교적 가까운 물가지수는 소비자물가지수다. 그런데도 정부는 왜 근원물가지수를 산출하는 것일까. 근원물가지수의 정책적·통계학적 의미를 살펴봤다.

■근원물가가 뭐길래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근원물가지수 중 하나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지난달 전년 동월 대비 4.1% 오르며 지난해 12월과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달 난방요금이 급등하면서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5.2%)은 전월(5.0%) 대비 확대됐지만 이 물가지수 상승률은 난방비 급등에도 불구하고 전월 수준을 유지했다.

공급 충격에 취약한 석유류나 계절에 따라 가격 등락이 큰 농산물 등이 집계 대상에 포함되면 전반적인 물가 흐름을 왜곡할 수 있다는 취지로 1973년 1차 석유파동 당시 미국에서 처음 작성됐다.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 수준에 따라 통화정책을 펼치는데, 일시적 물가 상승에 대응해 금리를 높이고 나면 그 충격이 해소된 후에는 오히려 경기 침체 등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가령 지난해 전체 소비자물가는 2021년 대비 5.1%나 올랐지만 국내 곡물가격은 과잉생산과 소비 부진이 맞물리며 오히려 9.4% 하락했다. 천연가스나 석유류 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난방비 역시 공급 충격에 따라 일시적으로 가격이 오를 수 있는 품목이기 때문에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에는 아예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기준금리를 정하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이 근원물가지수를 주시한다. 지난 1일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기존보다 금리 인상 폭을 낮춘 베이비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발표하면서 “근원 PCE(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가 개선되는 등 상품 가격에서는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 완화)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전기료 등 민생 지표 일부 반영

■근원물가지수‘들’

국내에서 집계되는 근원물가지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2000년 2월부터 작성되기 시작한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다. 이 지수는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집계 시 포함되는 458개 품목 중 농산물(곡물 제외)과 석유류 관련 품목을 뺀 401개 품목으로 작성된다.

다른 하나는 집계 제외 품목을 더 확대한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다. 통계청은 수산물과 축산물, 가스와 전기 요금 등을 제외한 309개 품목의 가격만 집계해 이 지수를 작성한다. 곡물가격은 채소 등에 비해 비축미 등을 통해 공급 조절이 가능한 점을 고려해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에서는 예외적으로 집계 품목에 포함되지만,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에서는 제외된다.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물가의 기조 흐름을 보여주면서도 민생 물가와 더 맞닿아 있다는 장점이 있다. 1월 전기요금 인상에 따라 난방비가 크게 오른 점은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에는 반영된다. 이 지수는 지난달 기준 전년 동월 대비 5.0% 오르며 전월(4.8%)에 비해 오름세가 커졌다.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인정하는 근원물가지수다. 이 때문에 국제가 비교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 변동이 큰 품목을 더 많이 제거해 보다 근원적인 물가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도 장점이다. 정부는 당초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만을 근원물가지수로 발표해오다 국제 기준에 맞춰 2011년 11월부터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도 추가로 공표하기 시작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국제기구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집계 자체는 2011년 이전에도 해왔다”고 말했다.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에선
309개 품목만 더 촘촘하게 집계
OECD서 인정, 국제가 비교 도움

■근원물가가 ‘인플레 타깃’ 아닌 이유

정부가 물가 안정 목표로 삼은 지수는 근원물가지수가 아닌 소비자물가지수다. 한국은행은 1998년 물가안정제도를 도입한 이후 2006년까지는 근원물가지수를 물가 안정 목표(인플레이션 타깃)로 설정해 이를 바탕으로 금리를 조정해왔다. 그러나 2007년부터는 목표 대상 지표를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로 바꿨다. 근원물가지수는 소비 빈도가 높은 농수산물이나 석유류 품목이 빠져 체감물가와 괴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한 주요 국가들은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를 인플레이션 타깃으로 설정하고 있다. 물가안정목표제를 처음 도입한 뉴질랜드(1997년)를 비롯해 호주(1999년), 영국(2004년), 체코(2002년) 등은 인플레이션 타깃을 근원물가지수에서 소비자물가지수로 변경했다.

한은은 2015년 발표한 보고서 ‘물가안정목표제 도입국의 제도 현황 및 시사점’에서 “소비자물가지수는 지표의 안정성, 포괄 범위, 속보성, 높은 인지도 등에서 (물가 목표) 대상 지표로 가장 적합하다”며 “(물가 목표) 대상 지표는 기대인플레이션 형성의 준거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인지도 높은 소비자물가가 물가 목표 대상 지표로 가장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현행 소비자물가지수의 물가 안정 목표치는 2% 수준이다. 최근 물가가 크게 오르자 일각에서는 물가 안정 목표를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향후 에너지 가격이 꾸준히 오를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목표치를 3%로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13일 “(목표 조정은) 공이 골대로 못 간다고 골대를 옮기자는 격”이라며 “가장 나쁜 방법 같다”고 선을 긋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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