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류 언론은 反韓 여론몰이 자제…강경 국수주의 언론의 對韓 비판 보도와 달라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07 10:05
  • 호수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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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바라보는 중국 내 상반된 시선들

4월23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기 하루 전 거칠게 한국을 비난한 해외 매체가 있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였다. 환구시보는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와의 공동 사설을 통해 윤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 발단은 4월20일 공개된 윤 대통령의 로이터통신 인터뷰 내용이었다. 윤 대통령은 대만해협의 긴장 상황을 지목하며 “이런 긴장은 힘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 문제를 내정(內政)이라 여긴다. 이를 존중해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대만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해 왔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이런 기조를 처음으로 깨뜨렸다. 이에 분격한 중국은 같은 날 외교부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을 통해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인 스스로의 일”이라며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4월21일 친강 외교부장은 강도를 한층 높였다. 상하이에서 열린 포럼에서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이라며 “대만 문제를 가지고 불장난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당국과 장단을 맞추듯 환구시보는 “윤 대통령의 이번 대만 문제 발언은 1992년 중·한 수교 이후 한국이 밝힌 최악의 입장 표명”이라며 “한국이 이렇게 무지하고 악질적인 말을 할지 누가 알았겠느냐”고 질책했다. 환구시보의 대한(對韓) 비난 보도는 윤 대통령의 방미 기간 내내 계속됐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4월24일 베이징 외교부 청사에서 일일 브리핑을 하고 있다. ⓒAP 연합

정치적으론 차갑게, 경제적으론 미지근하게

4월24일에는 중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의 발언을 빌려 “미국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 한국 외교활동의 운신 폭을 크게 제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6일에는 윤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일본에 대해 “100년 전 일을 가지고 무조건 무릎 꿇으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 것을 비판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일본에 침략당했던 아시아 국가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저격했다.

4월28일에는 한미 정상회담 결과로 발표된 워싱턴 선언을 비난했다.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미국이 핵잠수함을 포함한 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할 경우 한반도의 또 다른 핵 위기를 촉발할 수 있으며, 그 결과는 미국과 한국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윤 대통령이 방미를 마치고 귀국한 4월30일에는 글로벌타임스가 “한반도에 미국의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중국·러시아·북한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해 보복에 직면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또한 “한국이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겪게 될 손실은 미국이 제공하는 보호와 투자보다 크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는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세세한 뉴스까지 날마다 보도하는 중국 유일의 국제뉴스 전문매체다. 발행부수가 200여만 부에 달하고 중국 내 영향력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중국인들조차 환구시보가 철저하게 자국의 국익을 대변하는 강경 국수주의 매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또한 글로벌타임스는 이런 중국 내 목소리를 대외에 여과 없이 전달하는 매체다. 따라서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가 중국 당국 내 강경한 목소리를 전하는 건 맞지만, 중국 주류세력의 생각이나 방향과 완전히 일치하진 않는다.

물론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에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 중국에 대만 문제는 내정이자, ‘핵심 이익 중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중국이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를 앞세워 끊임없이 한국을 비난하고 윤 대통령을 저격한 것은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방미나 한미 정상회담은 중국에서 주요 이슈가 아니었다. 심지어 국제뉴스에서의 비중도 작았다. 본업이 국제뉴스인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를 제외하곤 이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룬 중국 언론은 없었다. 오히려 이 기간에 중국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수단 내 중국인 문제였다.

내전이 격화된 수단에는 중국인이 외국인 중 가장 많은 1500명 이상 거주했다. 이들의 안전 문제는 4월23일부터 중국에서 큰 이슈가 됐다. 중국인들의 관심은 실제로 중국 최고의 권위와 영향력을 자랑하는 국영 CCTV의 뉴스 프로그램 ‘신원롄보(新聞聯播)’를 통해 엿볼 수 있다. 4월23일부터 28일까지 윤 대통령이나 한미 정상회담 관련 보도가 한 건도 없었다.

4월29일에야 한미 정상의 ‘워싱턴 선언’에 대한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김여정 부부장의 비난 성명과 한국 야당의 비판을 앞세워 보도했을 뿐이다. 이런 CCTV의 보도 행태는 노골적인 대한(對韓) 비판 보도를 계속했던 환구시보·글로벌타임스와 달리, 반한(反韓) 여론몰이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수위를 조절한 것이었다. 다른 주류매체의 보도 방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의 사설과 기사만을 중계하듯 릴레이 보도하고 언급하면서 중국 내 실제 분위기를 잘못 해석했다.

미국을 국빈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4월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랭경온’ 기조로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

여기에 몇몇 상황이 더해지면서 확대됐다. 중국 세관이 한국에서 수입되는 화물의 검사를 강화했다는 재중(在中) 한국인 커뮤니티 일각의 소문과 4월29일 CCTV가 긴급 편성한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가 그것이다. 《압록강을 건너다》는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이 미군과 격전을 치른 장진호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통관과 관련된 중국 내 특이 동향은 없다. 《압록강을 건너다》도 중국인들이 거의 보지 않는 CCTV 군사채널에서 재방송되고 있다. 그렇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한미 정상회담 결과가 당장 한중 관계의 급속한 냉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렇듯 중국이 반한몰이에 나서지 않고 한중 관계를 급랭시키지 않는 이유는 한국과 미국이 피로 맺어진 군사동맹이라는 사실을 대다수 중국인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북한도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대척되는 ‘중조합작상호조약’으로 맺어진 피의 동맹이다. 따라서 중국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타깃 삼아 반한(反韓) 여론몰이를 일으키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 게다가 현재 중국 당국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침체된 경제 분야에서 하루빨리 성과를 내야 하는 입장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제는 뚜렷한 성과를 거둬 장기집권의 당위성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중 관계가 당분간 외교적으로 냉각기를 갖더라도, 중국이 2017년 사드 사태 때처럼 경제적으로 보복할 가능성은 낮다. 더군다나 미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 공세를 방어하기 바쁜 중국 입장에서 한국의 협력은 절실하다. 최근 중국은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대한 사이버 안보 심사에 들어갔다. 마이크론의 메모리 반도체가 중국에서 판매 금지될 경우 그 공백을 한국의 첨단 제품이 메워야 한다. 이렇게 중국이 ‘정랭경온(·정치외교적으론 냉담하지만 경제적으론 협력 유지)’ 기조로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 중국 경제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는 한국의 이해관계와도 맞물릴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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